반덤핑 관세 부과 압박, 미국 시장 장기적인 성장 위한 결정
미국은 이제 '시장'이 아니라 '생산기지'가 됐다. 적어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있어서는 말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예상보다 큰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생산품목, 투자규모, 예상 고용인원 등 업계 안팎에서의 추정치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는 28일(현지 기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카운티에 가전 공장을 설립한다는 내용의 투자 의향서(LOI: Letter Of Intent)를 체결했다. LOI를 체결한 곳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윌라드 호텔(Willard InterContinental Washington)이다. 삼성전자는 그야말로 '보란듯이' 세계 최대 가전시장이 미국을 잡기 위한 본격적인 구애를 시작했다.
투자액은 약 3억8000만달러(약 4300억원)로 당초 예상했던 3억 달러를 웃돌았다. 오븐레인지 정도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됐던 품목은 '세탁기'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그만큼 예상 고용 규모도 늘었다. 현지 고용 규모는 약 950명으로 예상수준인 500명의 두 배에 가깝다.
◆삼성, 예상보다 늘어난 투자규모…미 보호무역주의에 부담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는 올초부터 예상됐던 터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 건설 가능성 기사를 링크하며 "고맙다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뉴베리 카운티에 미국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의 공장을 인수해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시에 투자를 하더라도 '생색내기용'이 아니겠느냐라는 전망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의 결정은 과감했다. 가전시장의 주요 품목인 세탁기를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세탁기가 생산될 예정이다. 투자를 결정한지 1년도 안돼 '미국산 세탁기'가 생산되는 셈이다. 세탁기는 삼성전자에게 효자이자 1순위 고민의 대상이었다. 미국 시장에서 우위를 점유하고 있지만, 지난 몇년간 미국에서 반덤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미국 토종 가전업체 월풀의 공세로 쫓기듯이 생산기지를 옮겨 다녔다. 미국에 가전공장 설립을 검토한 기간이 3년이나 되는 까닭도 이러한 과정과 무관치 않다.
삼성은 멕시코에서 세탁기를 생산해 미국에 공급했었다. 2012년 미국 상무부가 한국과 멕시코에서 생산된 삼성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겼다. 그마저도 올 초에 중국에서 생산해 판매한 세탁기에 30~50%에 이르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현재는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삼성·LG전자, 다른 듯 닮은 투자…"장기간 검토 후 작년 말 최종결정"
이러한 과정은 지난 3월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세탁기 생산공장을 짓기로 한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오랜시간의 생산기지 검토 끝에 최종결정을 한 시점은 작년 말이었다. 각 주마다 다양한 인센티브와 혜택을 제시하다보니 저울질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시기와도 맞물린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LG전자는 6년 전인 2010년부터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세탁기 생산지를 검토했다. 2014년 물류 인프라, 현지 부품 수급, 인건비 등을 고려해 8개 주(州)를 후보지로 선정했고 지난해 말에는 4개 주(州)를 2차 후보지로 압축한 끝에 테네시주 클락스빌을 최종 선정했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주 몽고메리카운티 클락스빌에 2019년 상반기까지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해 세탁기 생산공장을 설립한다. 미국 신공장은 대지면적 125만㎡에 건물 연면적 7만7000㎡ 규모다.
당초 LG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부지 계약을 완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맞춰 본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게 현지 소식통의 얘기다. 본계약을 체결하고 생산라인 설계를 마치면 연내에는 착공이 가능해진다.
LG전자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세탁기를 생산해 미국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미국 신공장이 가동된 이후에도 한국의 경남 창원 생산기지는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미국 시장에서 삼성과 LG전자는 아시아에서 물건을 팔러온 '세일즈맨'에 불과하지 않다. 시장을 주도하고 트렌트를 이끄는 1위권 업체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트랙라인(Traqline)’ 조사 결과, 지난해 미국 가전 시장에서 점유율 17.3%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 북미의 대표적인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Dacor)를 인수했다.
LG전자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90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10년 연속 부동의 1위(미국 스티븐슨 컴퍼니조사 결과)를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미국시장에서 점유율은 28.9%에 달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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