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면도기가 왜 이렇게 비싸야 하지? 고정관념 밀어버린 '1달러의 기적'…면도날 배달로 1조 번 이 남자

입력 2017-06-29 17:18  

마이클 두빈 달러셰이브클럽 CEO

면도날 정기 배송 '달러셰이브클럽'
신문·잡지 정기구독 서비스처럼 단순 서비스에서 블루오션 찾아

Shave Time, Shave Money
직접 출연한 유튜브 동영상 '홈런'
첫해 매출 700만弗·회원 300만명

전통의 면도기 강자 질레트 위협
유니레버 "바로 이거야" 1조 베팅
한국 제조사 도루코가 파트너
남성 화장품·샴푸 등으로 품목 확대



[ 박상익 기자 ] 남성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면 죽을 때까지 면도라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처럼 수염을 기르는 게 쉽지 않은 나라에선 면도한 얼굴로 출근하는 것이 매너다. 매일 아침 면도한다면 2~3주에 한 번씩 면도날을 교체하는 게 좋지만 적지 않은 남성들이 날이 무뎌져 면도가 잘되지 않을 때까지 무심코 쓴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들은 면도날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했고 구입하는 일도 귀찮아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마이클 두빈(38)과 친구 마크 리바인은 이 점에 착안해 2011년 작은 회사를 차렸다. 푼돈만 내면 면도날을 제때제때 집으로 배송해 준다는 ‘달러셰이브클럽(DSC)’은 기존 유명 브랜드가 장악한 면도기 시장에서 면도날 배송이라는 블루오션을 만들어냈다. 2016년 유니레버가 10억달러(약 1조1445억원)에 인수하면서 DSC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성공신화를 이뤄냈다.

정기 배송으로 남성 소비자 끌어들여

DSC의 사업 방식은 단순하다. 월정액 회원에 가입하면 매달 사용할 면도날을 집으로 보내준다. 월 1달러를 내면(배송비 2달러 별도) 2중날 면도기 다섯 개를 받을 수 있다. 6달러를 지불하면 4중날 면도날이 네 개, 9달러를 내면 6중날 면도기 네 개가 오는 식이다. 첫 번째 배송 때 보내준 면도기에 면도날만 계속 갈아끼워 사용하면 된다.

이 같은 판매 방식은 흔히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로 불린다. 신문이나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것처럼 매달 일정액을 내고 상품을 받거나 서비스를 받는 개념이다. 가정, 직장에서 유산균 음료를 마시거나 정기적으로 침구 청소를 받는 것도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 너무 바빠 물건을 사러 갈 시간이 없거나 소비 성향이 까다로운 소비자, 반대로 물건을 고를 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유튜브 광고로 브랜드 이미지 각인

두빈은 소비자들에게 자사 서비스를 각인시킬 방법으로 영상 광고를 선택했다. 대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TV CF 대신 유튜브를 활용했다. 유튜브에 회사 이름을 검색하면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선 두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브랜드 면도기를 사용하느라 한 달에 20달러를 쓰는 것이 과연 좋은가”라고 지적하면서 DSC의 장점인 저렴한 가격을 강조한다. 광고에서 “DSC 면도날은 끝내주게 좋다”며 비속어 사용까지 서슴지 않았다. 광고는 ‘면도하듯 시간과 돈을 절약하자(Shave Time, Shave Money)’며 익살스럽게 마무리한다.

창업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모습에 미국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이 광고는 조회 수 2459만 회를 기록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4500달러를 들인 광고가 올라온 당일 DSC의 면도기 재고가 동났다. 미국 CNBC방송은 “지난해 6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고 차단 소프트웨어를 쓰는 상황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며 DSC의 광고 전략을 호평했다.

전통의 면도기 브랜드 위협

DSC는 창업 첫해 700만달러 매출을 올렸다. 이듬해 매출은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2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월 기준 미국 온라인 면도기 판매 시장의 47.3%를 차지했다. 전통의 면도기 브랜드인 질레트의 시장점유율 23.1%보다 두 배나 높다. 위기감을 느낀 질레트는 DSC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을 냈지만 DSC의 질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DSC가 급성장한 배경으로는 한 달에 만원도 되지 않는 비용 덕분에 경쟁자들이 가격 경쟁에 끼어들 여지를 아예 없애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해진 날짜에 물건을 정확히 배송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서비스 차별화를 꾀하기도 쉽지 않다. 신선식품에 비해 배송일자에 대한 민감도도 높지 않다.

무엇보다 관성대로 물건을 구입하던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권을 보여주고 그 시장을 독점해 버렸다는 점이 성공비결로 꼽힌다. 소비재 판매 기업이지만 두빈 자신이 잘 모르는 제조업에는 직접 도전하지 않고 한국 면도기 제조업체인 도루코와 접촉해 고품질의 면도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니레버가 1조원에 인수하며 ‘대박’

지난해 7월,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DSC를 현금 10억달러에 인수했다. 분명 성공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던 기업이었지만 그래도 인수액은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유니레버는 DSC를 두고 ‘면도날뿐만 아니라 독특한 상품을 제공하는 진정한 브랜드’라고 평가했다. 앨런 조프 유니레버 퍼스널케어부문 사장은 “우리는 2015년 1분기에 DSC 회원이 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1년 뒤에도 여전히 고객으로 남아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정기 구매시스템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반복 구매 확률이 높고 더 많은 소비자 데이터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DSC의 매수청구권(콜옵션)을 갖고 있던 도루코는 지난 4월 이를 유니레버에 매각하며 덩달아 590억원을 벌어들였다. 유니레버는 DSC를 발판 삼아 질레트, 시크 등이 주름잡고 있던 면도기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DSC는 적절한 구매 동기만 주면 남성들도 소비재 영역에서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면도날 판매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남성용 화장품, 샴푸, 화장실용 물티슈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유니레버에 매각한 이후에도 두빈은 여전히 CEO로 DSC를 이끌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진 않았지만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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