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를 지향하느냐고. 그가 답했다.
[ 유재혁 기자 ] “큰 상을 받아 영광입니다. 너무 감사하고, 먹먹할 따름입니다.”
배우 손현주(52)가 30일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극장에서 폐막한 제39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보통사람’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칸,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4대 국제영화제로 꼽히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1993년 ‘살어리랏다’로 수상한 이덕화 이후 24년 만이다. 1989년 강수연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2003년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보통사람’은 이날 영화제에 자체 심사위원단을 파견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가 주는 최우수영화상도 받았다.
손현주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다른 영화 촬영현장인데 스태프가 수상 소식을 전해줘 깜짝 놀랐다”며 “너무 기쁘다”고 했다. 그는 “촬영 때문에 모스크바에 직접 가지 못해 아쉽다”며 “대신 수상해준 김봉한 감독에게 조만간 소주를 사야겠다”고 말했다. 이어 “딱 작년 이맘때였는데, 태풍 차바가 덮쳐 어렵게 촬영을 이어갔다”며 “그때 고생한 스태프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덧붙였다.
‘보통사람’은 5공화국 정권의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가 국가안전기획부가 공작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삶을 송두리째 잃는 이야기다. 손현주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출신 형사 강성진 역을 맡아 독재권력에 짓밟히는 보통사람의 고뇌와 아픔을 연기했다. 성진은 언어장애인 아내, 다리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2층 양옥집에서 반듯하게 살아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폭압적인 정권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지난 3월 개봉 당시 손현주는 이 작품에 대해 “독재정권 시대가 배경이지만 가족 중심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평범한 삶을 탈피하고 싶던 인물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갔고, 타협하면서 오는 갈등들을 표현해야 했다”며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은 198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사람’이 1980년대를 대변하는 영화는 아니다”며 “강성진이라는 인물의 삶을 단편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봐야 정확하다”고 했다.
손현주는 평범한 외모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는 배우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1989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다수의 마당극에 출연한 뒤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에 데뷔했다. 드라마 ‘폼나게 살거야’ ‘황금의 제국’ ‘추적자’ 등으로 방송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영화계에서도 ‘숨바꼭질’ ‘악의 연대기’ ‘더 폰’ 등 여러 스릴러를 흥행에 성공시키며 ‘손현주표 스릴러’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코미디 등 더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했으며 그 과정에서 ‘보통사람’을 택했다.
그에게 어떤 배우를 지향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거창한 것을 꿈꿔본 적은 없어요. 그냥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찍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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