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신임 한국금융학회장의 쓴소리 "정부는 근시안 정책 펴고, 업계는 관치 길들여져"

입력 2017-07-0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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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하게 추진된 정부 정책, 시장상황·현실 고려 안해
"가계부채 토론회 열자"

경쟁력 뒤떨어진 금융사들, 주어진 국내 영역에만 안주
은행 중심의 지주체제도 문제



[ 정지은 기자 ] “정부는 금융정책이나 제도를 너무 급하게 만듭니다. 시장 상황과 소비자 여건 등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금융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지난 1일 제27대 한국금융학회장으로 취임한 박영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사진)는 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금융 발전을 위해선 정부와 업계 모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 1년간 한국금융학회를 이끈다. 그는 정부뿐 아니라 금융업계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금융회사들이 규제에 길들여져 스스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것도 걱정”이라며 “기존 관행이 한국 금융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금융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과거 금융위원회 금융회사 지배구조개선 태스크포스(TF) 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금융분과 위원 등으로 활동할 때 ‘우리나라는 금융정책이나 제도가 너무 급하게 만들어진다’고 느꼈습니다.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나 많은 주장이 산발적으로 제시되고 논의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학회장으로 선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긴 호흡을 갖고 금융관련 정책 제안 연구를 활발히 하는 학회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섭니다.”

▷금융계 최대 현안은 무엇입니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가계부채입니다. 가계부채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면서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이 와중에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더욱 심각해졌고요. 당시 은행들은 수익을 챙기는 데만 급급해서 가계대출을 마구잡이로 늘렸습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까요.

“이자나 원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에 대한 대출제한 장치를 강화하는 게 필요합니다. 갚을 수 없는 처지인 개인에게 대출을 제공한다는 것은 당장엔 도움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더 큰 빚더미를 방치하는 겁니다. 금융회사의 대출 의사결정은 그들의 수익이나 위험관리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대출제한 기준을 정비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금융연구원 등에 공동 토론회 개최를 제안할 것입니다.”

▷새 정부가 공약사항으로 빚 탕감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갚으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는 게 상당히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차주가 그동안 경제활동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이 명확히 수립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겁니다. 기본적으로 연체 탕감은 성실하게 부채를 갚아온 사람들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부분입니다. 이 제도를 악용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도 우려됩니다.”

▷금융정책·감독기구의 통합·분리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

“금융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조직과 감독정책을 수립하는 조직은 분리돼야 더욱 체계적으로 돌아간다고 봅니다. 지금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으로 구조상 분리는 돼 있지만 정책담당 조직이 감독조직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금융감독 기능이 금융정책이나 정치로부터 독립돼 작동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에 있습니까.

“한국 금융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은 데 반해 금융회사들이 규제에 익숙해져 새 돌파구를 찾지 않아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떤 산업이든 경쟁력을 키우려면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내 금융회사들은 정해져 있는 국내 영역에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는 데 안주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특히 정부가 정해놓은 규제의 편익을 누리면서 경쟁 없이 사업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게 문제입니다.”

▷금융지주 체제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현재 금융지주 체제는 은행 비중이 전체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과도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또 은행 중심의 경영 인력 순환문제가 있고, 지주사 체제에 있는 금융투자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금융투자산업 보험업 등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비은행부문 비중을 높여 은행 중심의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금융회사 지배구조에서 최고경영자(CEO) 선임이나 성과평가 및 보상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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