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행장은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최 행장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국제경제관리관,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서울보증보험 대표이사, 수은 행장 등 민과 관을 오가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최 행장은 정통 금융관료로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평가다.
국내·국제 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대표적인 금융통 관료 출신이기도 하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조기에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하며 국제 금융 분야에서 '환율 주권론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최 후보자는 이른바 '최ㆍ신ㆍ최ㆍ강 라인'(당시 직책으로 최종구 국제금융국장,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최중경 차관, 강만수 장관)의 일원으로 한·미, 한·중,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외환시장과 외화자금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이 훗날 전 세계적으로 위기 극복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환율 관리를 시장에 맡기기보다는 정부 개입으로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환율주권론자'로서 최 후보자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이때다.
이후 2009년 2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실무추진단 단장을 맡아 '전봇대 규제'를 개혁하는 데 힘썼고, 2010년 5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민감한 사안을 다루기도 했다.
2011년 4월에 친정인 기획재정부에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으로 돌아와 당시 유럽발 재정위기로 불안해진 외환시장을 '거시건전성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 건전성 부담금)로 안정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 후보자를 두고 "우리 정부엔 3년 전 전투에 투입됐던 주력부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 후보자는 기재부 차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행시 동기이기도 한 당시 최수현 금감원장과 'KB사태' 징계 관련 불협화음을 내다가 끝내 옷을 벗었다.
이후 1년여간 야인 생활을 지내다 지난해 1월 SGI서울보증 대표이사에 선임됐고 올 3월부터는 한국수출입은행장으로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이끌고 있다.
최 후보자는 업무 능력뿐 아니라 소탈한 성격으로 후배, 부하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기획재정부 시절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 뽑혔고, 금감원, 서울보증, 수출입은행 등 자리를 옮긴 곳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했을 때 노동조합의 출근 저지 투쟁 없이 '무혈입성'한 유일한 은행장이기도 하다.수출입은행장 취임사에서 "문서작성 줄이기, 보여주기식 업무나 행사·의전 안 하기, 구두 보고 활성화하기, 보고 시 실무자 동반하기 등을 실천하겠다"고 밝혀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그의 업무 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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