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나흘 만에 정면도발
'대화 복원' 한국 주도 대북정책 출발부터 삐끗
문재인 대통령 "깊은 실망"…대북강경 급선회 가능성
한·미 외교장관 긴급 통화 "유엔 차원 강력한 조치"
[ 손성태/이미아/조미현 기자 ]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나흘 만에 미국 서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모색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의 4일 도발은 ‘북한에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되 올바른 여건이 조성된다면 대화를 하겠다’는 한·미 양국의 대북 공조 정책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핵·미사일 고도화 작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불리는 ICBM의 첫 실험을 단행함에 따라 한반도 안보위기는 한층 고조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한국 주도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출발부터 낙관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 걸린 ‘한국 주도’ 대북 정책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보고받고 큰 실망과 함께 ‘노기’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도발을 줄이고 국제적 의무와 규약을 준수하는 전략적 선택을 촉구한 지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도발을 감행한 데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의 무모함” “망상을 버려라” 등과 같은 이례적으로 강경한 어조로 김정은 북한 정권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나는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는 ICBM을 발사함에 따라 당분간 북핵 국면은 대화보다는 제재·압박 국면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어떤 도발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위한 모든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날 긴급통화를 하고 현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협의했다. 틸러슨 장관은 유엔 안보리 차원의 강력한 조치를 비롯 대북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가운데 특히 중국 측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았다고는 볼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전한 북핵 폐기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새 정부가 대화를 거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文, 4강 연쇄회담에서 북핵해법 찾나
문 대통령은 5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4박5일 일정으로 독일로 출국한다. 문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이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하고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하루 전인 6일(현지시간)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상을 담은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연내 남북대화 재개를 포함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 방안을 담은 ‘신(新)베를린 선언’이 나올 전망이다. 또 같은 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하고 저녁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한·미·일 3국 정상 만찬을 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일 3자 회동에서 대북 제재를 위한 공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7일에는 아베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각각 연쇄 회동을 한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 강도를 높임에 따라 G20 정상회의에서도 북핵 문제가 주요 아젠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은 이번에 만날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과 북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공동대응을 위한 공조 기반을 확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성태/이미아/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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