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만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백성을 살기 좋게 한 세종의 위대함은 공평하고 정확한 과세를 위한 조세제도 개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세제도의 기본은 조용조(租庸調) 체계였다. 조(租)는 토지에 붙는 세금으로 곡물을 부과한 것이고, 용(庸)은 사람을 대상으로 노동력을 부과한 것이며, 조(調)는 지역 등을 대상으로 특산물을 부과한 것이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던 세종 초기, 기후 악화와 농지 황폐화가 심해지자 농지에 부과하는 세금의 형평성과 징수 과정에서 탐관오리의 수탈 문제가 대두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은 토지 측량 방법을 개선하고 우리 땅에 맞는 농사법을 소개하는 《농사직설》을 편찬하는 등 과학적 방법으로 농업 생산성을 증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한편으로 세종은 공평한 과세를 위해 세제를 개혁했다. 수년간의 논의와 여론조사를 거쳐 토지 비옥도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전분 6등법’, 풍년이냐 흉년이냐에 따라 세금을 달리 매기는 ‘연분 9등법’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공법(貢法)을 제정했다(세종 26년, 1444년).
세종이 공평 과세를 위해 조세제도를 개혁한 것도 대단한데,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여론조사를 통해 백성 의견을 들어 조세정책을 바꾸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세종 당시 조선 인구 69만여 명. 이 중 25%인 17만 명 정도가 여론조사에 참여했고, 57%의 찬성을 얻어 공법을 도입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세종 때 국고가 최대였다고 하니 이는 과학기술, 공법 도입 등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세종은 재위 시절 가뭄으로 전국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왕족에게 농작물 수확의 권리를 주는 과전 지급을 삭감하고, 일정 수준 이상 주지 못하게 하는 욕감과전(欲減科田)을 명하고 이를 법제화해 국가 재정지출 절감에 솔선수범했다.
요즘 일자리 창출, 복지 수요 증가 등으로 재정 수요가 늘어나면서 세제 개편 및 증세 여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조세 문제의 핵심은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원 부담을 그 구성원 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므로, 세제 개편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솔선수범, 여론 수렴 및 시범 시행 등 15년여에 걸쳐 세제 개혁을 이룩한 세종의 지혜를 빌려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공평하고 소득 재분배 기능이 향상되도록 세제가 개편되길 기대해 본다.
이기화 < 다산회계법인 대표 pcgrd21c@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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