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1895)에서 근대 민주주의가 성립된 과정을 앵글로색슨계와 라틴계로 구분했다. 앵글로색슨계는 점진적으로 의회제도를 형성한 반면, 프랑스 등 라틴계는 기나긴 유혈 혁명과 투쟁으로 점철됐다는 것이다. 르 봉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민족성이지 정치제도가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오늘날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 체제는 상·하원 양원제로 닮은꼴이다. 양원제는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70여 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마다 형성 배경이 달라 의원 숫자는 천양지차다. 영국 상원은 성직·법률·세습 귀족을 대표하고 하원이 평민을 대표해 균형을 도모하는 구조다. 명예직인 상원은 한때 1300여 명에 달했으나, 토니 블레어 정부의 개혁으로 678명으로 줄었다.
다른 나라들은 상원이 지역대표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 상원은 선거구별 하원의원, 지역의원 시의원 등의 간접선거로 348명을 뽑는다. 일본 상원(참의원)도 대선거구와 비례대표로 242명을 선출한다. 연방제인 미국 독일 스위스 등은 상원이 주(州)를 대표하는 분권적 기관이다. 미국 상원은 주마다 2명씩 100명이다.
하원은 인구비례로 뽑지만 선거구 크기에 따라 의석수 편차가 크다. 3억 명이 넘는 미국은 하원 의석수가 435명에 불과하다. 물론 자치권을 가진 주의회가 따로 있긴 하다. 프랑스(577명), 영국(650명), 독일(631명) 등은 인구에 비해 하원 의석수가 많은 편이다. 인구가 프랑스의 두 배인 일본은 하원(중의원)이 480명으로 오히려 적다. 의원 숫자엔 정답이 없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그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1년 내 의원 수를 3분의 1 감축하겠다고 선언해 관심을 모은다. 925명인 상·하원 의원을 610명으로 줄이는 것이다. 또한 연임 횟수를 제한하고 의원 범죄를 별도 심리하던 특권도 없애겠다고 한다. 쓸데없이 의원 숫자가 많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 작년 말 이탈리아 렌치 총리는 상원 축소안(315명→100명)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사퇴했다.
마크롱의 의회 개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 때면 의원수(300명)를 줄이고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정치인들이 선거만 끝나면 꿀먹은 벙어리여서다. 차제에 지방선거처럼 국회의원도 3연임으로 제한을 검토할 만하다.
진짜 문제는 의원 숫자가 아니라 후진 정치 문화에 있다. 온갖 특권을 누리고, ‘뭐든지 만들면 법’이라는 입법권 남용이 용인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북유럽처럼 의원이 봉사직이라면 이런 고민이 사라질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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