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구상' 내용은
원고지 40장 절반이 대북구상…막판까지 수정 또 수정
"북한 붕괴·흡수통일 바라지 않아"…완전 비핵화·평화협정 체결 강조
개성공단 재개 등은 언급 안해
[ 베를린=손성태/조미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원고지 40장가량 연설문의 절반 이상을 대북 정책 구상에 할애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면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며 사실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대화할 뜻을 밝혔다.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과 노무현 정부의 ‘10·4 정상선언’ 실천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두 선언을 통해 남북문제의 주인이 우리 민족임을 천명했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며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흡수통일과 같은 인위적인 통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북한에 체제 보장을 ‘당근’으로 제시하면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는 ‘당장 통일보다 남북의 공존과 공영을 추구한다’고 밝힌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베를린 선언’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과 관련 한반도 신(新) 경제지도 구상을 밝히면서도 “북핵 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북한의 경제 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했던 김 전 대통령보다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에 경제 부문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설문 거듭 수정
북한이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고 이틀 만에 이뤄진 문 대통령의 쾨르버 연설은 막판까지 거듭 수정됐다. 북한에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한 문구는 ICBM 시험 발사 후 연설문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ICBM 도발로 국제사회가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대화 기조는 유지하되 북한에 ‘배수진’을 친 것이란 해석이다.
이날 현지에서도 오전 9시께 기자들에게 연설문이 처음 배포됐지만, 문 대통령 연설 1시간10분 전인 오전 11시20분 수정본이 재차 배포됐다. 수정본에는 “지금처럼 당국자 간 아무런 접촉이 없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상황관리를 위한 접촉으로 시작해 의미 있는 대화를 진전시켜나가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고립이 심해지고 있는 북한에 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밝히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무산될 뻔한 ‘달빛정책’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이 응답할까
북한이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에 언제 응답할지 주목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ICBM 발사 후 “핵과 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연설을 통해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으면서 북한에 공을 넘겼다. 1차적인 데드라인은 이달 27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휴전협정 64주년인 7월27일에 맞춰 군사분계선 적대행위를 서로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10·4 정상선언 10주년인 오는 10월4일 성묘 방문을 포함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자고 했다. 또 내년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 간 특사 교환 등도 요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 이후 3개월 만인 2000년 6월15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베를린=손성태/조미현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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