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푸에르토리코의 비극

입력 2017-07-07 18:0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의 작은 섬 푸에르토리코. 제주도 다섯 배 넓이에 주민 370만 명이 사는 미국 자치령이다. 수도 산후안의 추모비에는 뜻밖에도 ‘한국전 참전 희생자’ 75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근 엘 모로 요새 입구에도 ‘한국전 50주년’ 동판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푸에르토리코 병사가 6만여 명이나 참전했지만 모두 미군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오래전부터 열강의 각축장이 돼 왔다. 1492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뒤 400여 년간 스페인 지배를 받다가 미국·스페인전쟁 이후 1898년 미국령이 됐다. 1952년부터 외교와 국방은 미국, 내정은 직선 주지사가 맡고 있다. 올림픽이나 미스유니버스대회에 푸에르토리코 이름으로 참가하지만 독립국은 아니다. 주민들도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미 대통령 선거 투표권은 없다.

1967년부터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려는 주민투표가 다섯 차례나 있었으나 흐지부지됐다. 주로 승격하면 연 200억달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달 투표에서도 찬성률이 높았지만 반대파의 보이콧으로 투표율은 최저(23%)였다. 미 국무부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0년대 초까지는 낮은 법인세율과 인건비 덕분에 기업이 몰려 호황을 누렸다. 미국 자치령이어서 채권 발행도 쉬웠다. 하지만 쉽게 빌린 돈이 화근이었다. 4년 단위로 주지사가 바뀔 때마다 무분별한 투자로 예산을 날렸다. 과도한 복지도 발목을 잡았다. 포브스지(誌)에 따르면 빈곤층 3인 가구의 월 보조금이 1743달러로 일하는 최저 시급 소득자(월평균 1159달러)보다 많다. 2006년 법인세율과 판매세율을 올린 뒤 외국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실업률은 12.4%까지 올랐다.

현재 공공부채만 740억달러(약 85조원)다. 2013년 파산한 디트로이트시 부채(180억달러)의 네 배가 넘는다. 연금 미지급액을 포함하면 빚이 1230억달러(약 142조원)로 불어난다. 견디다 못한 자치정부는 지난 5월 미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푸에르토리코 구제금융은 없다”고 단언했다.

다급해진 자치정부는 핵심 기간시설 매각에 나섰다. 산후안의 항구 운영권부터 공항·페리선·공영주차장 운영권, 교통벌금 징수권까지 매물로 내놨다. ‘카드 빚 갚으려 집 파는 꼴’이라는 비판에도 달리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한때 카리브해 최고 국민소득을 자랑하던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Puerto Rico)’라는 뜻의 이름이 무색하다. 어느새 백발이 된 6·25 참전용사들의 노후는 또 어떻게 될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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