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수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일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공정위는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민원처리 기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 다양한 갑을관계 관련 민원 해결 요청이 쏟아져 공정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제한적인 공정위의 자원을 개별 민원을 해결하는 데 소진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공정위의 역할은 민원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야를 선정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제1과제’로 꼽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문제와 관련해선 “사전적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재벌개혁 역시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란 뜻을 나타냈다. 재벌정책의 목적이 4대 그룹 규제가 아니고, 4대 그룹만 타깃으로 한 규제를 새롭게 만들지 않겠다는 뜻도 강조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대기업 규제 수단으로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 보유 요건(상장 20% 이상, 비상장 40% 이상)을 억지로 올릴 필요 없다. 지주회사가 스스로 지분율을 높게 유지할 ‘경제적 유인’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법인세법상 지주회사에 대한 자회사 배당금에 대해 ‘익금불산입’(세법상 이익에 포함되지 않게 하는 것)을 허용하는 지분율을 높이면 된다.
▷김 위원장=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는 게 효율적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이 있다. 법인세법 익금불산입 규정을 촘촘하게 만들면 (지주회사 규제와 관련한)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만우 교수=순환출자의 대안으로 도입된 게 지주회사 체제다. 그런데 현재 법인세법을 보면 순환출자기업에도 익금불산입을 허용한다. 순환출자를 규제하면서 세제혜택을 주는 건 디테일이 안 맞는 구조다.
▷김 위원장=정부 부처가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만 고민하고 법무부는 상법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가 각자 규제수단을 갖고 시스템적인 규제를 하는 게 필요하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시장에선 공정위의 역할을 ‘약육강식 시장에서 경제검찰’ 정도로 생각한다. 사실 공정위 역할은 경쟁촉진, 즉 ‘약육강식’마저도 질서있게 일어나도록 뒷받침하는 게 아닌가.
▷김 위원장=경쟁법(공정거래법)의 기본 목적이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자 보호는 아니다. 취임사에서도 이 표현을 썼다. 공정위 본연의 역할과 공정위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괴리가 있다는 현실적 고민을 얘기한 것이다. 그런데 취임사가 나가고 나서 언론에서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썼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가맹사업, 대리점업, 유통업, 하도급 등 갑을관계 관련 민원이 공정위에 쏟아지고 있다. 이러다간 자칫 공정위가 민원처리기관으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많다. 개별 민원은 당사자, 각종 분쟁조정기관을 거쳐서 해결돼야 한다. 공정위는 그런 민원들 중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민원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제도개선책을 고민해야 한다.
▷이인실 교수=평소 일자리 창출 관련 공정위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명박 정부 때 공정위가 물가관리를 한 것처럼 이상한 상황이 될 것 같다.
▷김 위원장=일자리 문제는 공정위 권한 밖의 일이다. 다만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1차분배가 좀 더 공정한 쪽으로 이뤄지도록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게 공정위 역할이다. 일자리를 실제로 만드는 데 개입하게 된다면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가 나온다.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정부 1년 예산이 재벌 1년 매출도 안 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김 위원장=제가 고민하는 바를 정확히 지적하셨다. 기업을 한순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없다. 재벌개혁 문제, 갑을관계 문제를 점진적이지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후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끌어 가겠다. 당장 공정위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민원 해결을 해준다면 각광받겠지만 그게 실패를 자처하는 일이다.
▷이 명예교수=공정위가 있는데 ‘을지로위원회’는 뭐하는 곳이냐.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보완관계인지 대체관계인지 궁금하다.
▷김 위원장=민주당에 있는 을지로위원회도 그렇고 새로 만드는 ‘범정부 을지로위원회’도 그렇고 집행기관이 절대 될 수 없다. 집행은 역시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기구가 해야 한다. 을지로위원회는 민원을 듣고 정책 방향을 고민하면서 집행기구에 토스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집행기구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최근 공정위 패소율이 굉장히 높다. 국민정서를 등에 업고 과징금을 매겨서 카타르시스를 주고 다시 돌려주는 게 진행됐다. 공정위 내부 역량 부족 때문 아닌가.
▷김 위원장=공정위가 ‘1심 법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부족한 분야가 경제분석 역량이다. 미국에서 공정위 역할을 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나 법무부(DOJ)엔 박사급 경제분석 인력이 180명을 넘는다. 한국 공정위 숫자는 부끄러워서 말씀드리지 않겠다. 경제분석 역량을 키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게 여러분이 도와줘야 한다.
▷차 교수=최근 수서고속철도(SRT) 하고 KTX가 합병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철도산업의 공공성 측면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악수다. 경쟁을 없애고 공기업 독점을 허용하면서 공기업 시장 지배력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이중적인 잣대다.
▷김 위원장=SRT 합병 건에 대해선 또 설화를 낳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 언급은 안 하겠다.
▷문정숙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공정위가 소비자정책 부문에선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4차 산업혁명이 온다고 하는데 소비자단체들에 대한 정책 방향이 준비된 게 있는지 궁금하다.
▷김 위원장=공정위가 소비자정책 주무기관이지만 한계가 있다.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소비자정책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기관으로 격상해 공정위가 간사 역할을 하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단체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는 8월29일 소비자대회에는 무조건 참석해 경청하고 공정위가 할 수 있는 말을 하겠다.
▷백만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리사(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혁신 경쟁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지식재산권 역할이 중요하다. 신규 진입자인 벤처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게 현실적으로 경쟁을 확보하는 유효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공정위는 지식산업감시과를 신설해 특허권 남용 조사를 하는데, 특허권 남용에 대한 감시보다는 특허권 보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김 위원장=‘기술탈취’라는 표현처럼 중소혁신기업이 만들어낸 지식재산권이 보호받고 있지 않다. 공정위가 지식재산권 침해를 판단할 만한 전문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재권 침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 풀’을 구성해 공정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회’를 만들려고 한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경제력 집중을 흔히 얘기하는데, 부가가치 기준으로 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삼성그룹의 부가가치 비중이 2013년 4%를 넘다가 지금은 2.5%대로 떨어졌다.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경제력 집중 해소가 경제민주주의 정책의 핵심은 아니다.
▷김 위원장=경제력 집중 이슈에 대해 어떤 지표를 만들어도 2014년 이후 최근에 와서 집중 추세가 완화되고 있는 것은 확연하다. 경제력 집중 문제에는 새로운 사고와 접근이 필요하다. 뭐가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과거식 사고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반성한다. 우리 사고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정책당국의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국내의 경제력 집중은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를 ‘착취’로만 보는 건 문제가 있다. 경제력 집중을 이야기하기 전에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기업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공정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 위원장=중소기업 보호, 을의 보호와 관련해 공정위의 기본적인 스탠스는 ‘직접적인 보호보다 먼저 해야 하는 건 정보공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관계에서 무조건 가맹점만 보호하고 사전적 규제로 접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영업기밀 여부 등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양측 계약 사이의 정보를 좀 더 많이 공개하고, 시장에서 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접근해보겠다.
▷김인철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외국인 투자기업 관계자들은 ‘한국 사람들이 친절해 살기 좋은데 기업하기 불편하고 억울한 게 많다’고 말한다. 20년 고생해서 사업 기반을 쌓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나가라고 해서 한국을 떠나야 하는 외투기업도 있다. 대한민국 국격도 있고 공정하게 외투기업을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외투기업 문제는 공정위 자체가 다룰 이슈는 아니지만 정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 정부가 불확실성의 근원이 된다면 어떤 정부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기업의 환율관리 필수 아이템! 실시간 환율/금융서비스 한경Money
[ 무료 카카오톡 채팅방 ] 국내 최초, 카톡방 신청자수 30만명 돌파 < 업계 최대 카톡방 > --> 카톡방 입장하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