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손자' 연루 숭의초 학폭, 가해자에 관대했고 피해자에 가혹했다

입력 2017-07-12 15:57   수정 2017-07-12 17:59

학폭위 진술서 '유출·분실'
교장·담임 등 중징계 요구



가해학생에는 관대했고 피해학생에는 가혹했다. 재벌 손자와 연예인 아들이 연루된 숭의초등학교 학교폭력 사태 은폐·축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이 12일 발표한 숭의초 학폭 사안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숭의초는 학폭 판단의 중요 자료인 학생 진술서를 가해학생 부모에게 유출하는가 하면 진술서 일부를 분실했다.

담임교사는 평소 가해학생들이 피해학생을 괴롭힌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러나 수련회에서 이들을 같은 방에 배정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들은 학폭 관련 사실은 묵살했다. 피해학생 측이 학교폭력센터에 신고하자 그제야 상급자에게 알렸다. 윗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감은 피해자 진술을 압박했고 교장은 도리어 피해자 학부모에게 전학을 유도하는 발언까지 했다.

교육청 감사 내용대로라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절차는 유독 재벌 손자 A군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피해학생 부모는 사건 발생 후 한 주가 경과한 4월27일 A군을 포함한 4명을 가해학생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A군은 한 달 이상 지난 6월1일 1차 학폭위에서도 심의 대상인 가해학생 명단에서 빠졌다.

전담기구 교사와 학폭위 위원을 겸한 이 학교 생활지도부장은 A군 부모의 요구에 응해 조사 자료인 A군의 ‘학생 확인서’와 ‘자치위 회의록’을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넘겼다.

담임교사가 최초로 조사한 학생 9명의 진술서 18장 가운데 6장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실된 진술서 중 4장은 비교적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었던 ‘목격자 진술’이었다. 또 다른 2장은 피해학생에게 물비누를 강제로 먹였다는 의혹에 대해 가해학생 2명이 작성한 진술서였다.

담임교사는 생활지도부장에게 진술서 18장을 모두 넘겼다고 주장하는 반면 생활지도부장은 애초부터 12장만 받았다며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정식 수사를 통해 진위가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 과정에서 A군은 별개의 학폭 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추가 확인됐다. 추가 학폭 피해학생 2명 중 한 명의 부모가 “야구방망이로 맞았다. 원망스럽다”고 문제제기 했으나 회의록에는 관련 기록이 없었다. 숭의초는 나머지 한 명의 피해학생이 학폭위 개최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이 학폭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학폭위를 열지 않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숭의초는 학폭위 규정에 학교전담경찰관(SPO) 1명을 포함한 위원 7명이 참여하도록 명시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에서 SPO를 배제하고 규정에 없는 교사 한 명을 위원으로 임명하는 등 학폭위를 부적정하게 구성·운영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숭의초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개교 이래 한 번도 학폭위를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은 “숭의초는 학폭위 개최 등 관련 절차를 ‘비교육적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학폭 발생시 담임교사가 책임지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학부모를 중재하는 게 관례였다”고 설명했다.

교육청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교장·교감·생활지도부장 해임, 담임교사 정직 등 4명에 대한 중징계를 숭의초 학교법인에 요구했다. 이와 별개로 진술서 유출과 분실에 대해서도 이들 4명을 수사 의뢰키로 했다.

숭의초는 교육청 감사 결과에 대해 60일 이내에 재심 요구할 수 있다. 숭의초는 감사 과정에서 “가해학생들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종교계 학교(미션스쿨)의 특성상 학생들이 온순해 그동안 학폭을 은폐·축소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고 교육청은 전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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