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나오면 정부 관료들 설득
특허 등 분쟁 잦은 실리콘밸리 "학계 연구비 지원은 관행"
[ 허란 기자 ] 구글이 지난 10여 년간 수백 건에 이르는 대학교수들의 논문에 연구비를 지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논문은 구글의 독점적 시장지배력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막아내는 데 활용됐다. 미국 워싱턴DC의 규제당국을 상대하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로비 활동이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논문 건당 5000~40만달러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구글은 이들 논문 연구비로 건당 5000달러(약 570만원)에서 40만달러(약 4억5800만원)를 지원했다. 논문 내용은 주로 구글이 사용자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무료 검색의 대가이므로 정당하다거나 구글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사용자를 상업사이트나 광고로 유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WSJ가 해당 논문을 작성한 대학교수에게 이메일 공개를 요청한 결과 호르헤 콘트레라스 미 유타대 법학과 교수 등은 논문을 발표하기 전 구글에 먼저 보내 의견을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논문은 구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았다. 폴 힐드 일리노이대 법학과 교수는 2012년 구글에 유리한 저작권 관련 논문을 쓰고 구글에서 1만8830달러를 지원받았지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WSJ 인터뷰에서 “실수로 빼먹었다”며 “하지만 지원금이 논문 내용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구글은 연구비 지원이 회사 창립 때부터 지속돼온 공적 사업의 일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창업 이후 줄곧 컴퓨터공학 연구 분야와 저작권, 표현의 자유, 감시 관련 정책 연구를 지원해왔다는 것이다.
◆논문은 어떻게 활용됐나
의회와 행정부가 있는 워싱턴DC는 구글 로비스트의 활동무대다. 구글 임원이나 구글의 로비스트들은 논문 주제와 예산을 정해놓은 목록을 들고 다니며 교수들을 물색했다. 이들은 또 구글에 유리하게 작성된 논문을 들고 정부 관료를 만나 설득했으며, 논문을 작성한 교수의 여행경비를 지원해가며 공무원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2010년 구글이 고용한 데번 더세이 당시 프린스턴대 기술 관련법 분야 연구원의 임무는 논문을 작성할 교수를 찾는 일이었다. 그는 구글에서 일하던 2년간 각종 콘퍼런스와 논문에 총 200만달러 이상을 지출했으며, 논문 작성자에겐 2만~15만달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이 같은 논문을 활용해 2012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반독점 위반 혐의로 고발당할 뻔한 상황을 모면했다. 지난달 유럽연합(EU)이 구글에 반독점을 이유로 27억1000만달러 벌금을 부과한 규제는 피해가지 못했다.
◆MS, 퀄컴도 연구비 지원
구글이 광범위한 학계 논문 지원 활동을 벌인 것은 반독점, 특허권 등 걸려 있는 법적 분쟁거리가 많아서다. 미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도 구글의 시장지배력이 가장 큰 만큼 적이 많다는 얘기다.
유튜브, 검색엔진, 구글지도, G메일, 구글플레이, 구글캘린더, 구글드라이브 등 구글의 7대 서비스 이용자 수는 월간 10억 명에 이른다.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은 연 800억달러(약 91조원) 규모다. 세계 온라인 검색의 90% 이상이 구글에서 이뤄진다.
비영리단체 ‘책임운동(Campaign for Accountability)’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구글은 2009년 이후 100건에 달하는 정책 관련 논문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또 100건가량의 논문이 구글이 자금을 대는 싱크탱크나 대학부설연구소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작성됐다. 책임운동은 비영리단체지만 오라클 등 구글의 경쟁사가 후원하는 곳이다.
오라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는 구글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가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구글과 수년째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들도 구글처럼 연구비 지원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MS는 구글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주장한 벤 에델만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의 논문에 연구비를 지원했다. 반도체 제조업체 퀄컴은 구글의 특허권 침해 소송과 관련해 자사에 유리한 논문에 자금을 댔다.
대기업들의 학계 논문 지원은 오랜 관행이다. 로빈 펠드만 UC헤이스팅스 법대 교수는 하버드법대 저널에서 “기업 지원을 받는 교수들은 학자라기보다 로비스트”라고 주장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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