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매년 막걸리 22톤 빚어 배나무에 주는 압구정 출신 칠순 농부

입력 2017-07-13 15:31   수정 2017-07-13 15:41


1973년 지금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자리는 성동구에 속해 있었다. 당시 스물 여섯살 청년은 이곳에서 5000여평(1만6500㎡) 과수원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과일 농사다.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읜 이 청년은 과수원 규모를 키우고 싶었다. 5000평 땅을 평당(3.3㎡) 1만7000원에 팔아 그 돈으로 경기 화성시 비봉면 땅 2만여평(6만6000여㎡)을 샀다. 그리고 가족이 모두 압구정동에서 화성으로 이사했다. 국내 대표적인 ‘배 명인(名人)’인 이윤현 현명농장 대표(70·사진)의 이야기다. 그는 이곳에서 45년째 배나무를 키우고 있다.

◆매년 막걸리 22t을 빚는다

지난달 말 서해안고속도로 비봉나들목을 빠져나와 500여m 달리자 현명농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농장 안엔 2층 집 옆으로 배 저장고와 가공공장, 농기계 보관소 등이 있다. 집 뒤 2만2000여평(7만2600여㎡) 규모의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2200여 그루의 배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 최고 품질의 배를 재배하는 농부다. 중학교 졸업 뒤부터 줄곧 배농사를 지어온 그는 2009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하는 최고농업기술명인 과수 분야 명인으로 뽑혔다. 배농사와 관련한 재배·저장·유통 노하우를 후배 농민들과 공유해온 공로도 인정받았다. 그는 “촌로(村老)로서 생을 마감할 뻔했는데 명인이란 이름을 달아줘서 영광스럽다”고 했다.


이 대표는 배농사를 통해 매년 7억~8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해마다 350여t 가량의 배를 수확한다. 이중 10% 정도는 대만 베트남 등 외국에 수출한다. 20%가량은 농장에 딸린 식품공장에서 배즙, 배고추장, 배조청 등의 가공식품용으로 쓴다.

이 대표의 배나무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배나무는 매년 그루당 10ℓ 가량의 막걸리를 마신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매년 22t의 막걸리를 담는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가축 분뇨를 이용해 만든 비료는 주지 않는다. 대신 쌀겨와 깻묵, 배즙, 골분·혈분·어분, 활성탄 등을 섞은 수제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천연 재료로 만든 퇴비를 주면 배 맛이 더 좋아질 뿐 아니라 토양 오염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이 못 먹는 건 배나무한테도 주지 않는다”며 “그게 고품질 배를 재배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나무에 막걸리를 주는 건 배의 단맛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막걸리를 퇴비로 주면 당도가 0.5~1브릭스(brix·단맛의 단위) 가량 올라간다는 얘기다. 지인이 소나무에 막걸리를 퇴비로 주는 걸 보고 30여년 전부터 이 방법을 이어오고 있다. 초기엔 막걸리를 사다 썼지만 몇 년 뒤부터 직접 담갔다. 양질의 막걸리는 주기 위한 것. 매년 7월 말이면 온 가족과 직원들이 달라붙어 배나무 2200여 그루에 줄 막걸리를 담근다.

"막걸리 만드는 걸 배우려고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 대표를 찾아갔어요. 아내랑 저랑 2주 동안 있으면서 배웠죠. 막걸리 만드는 게 쉽지 않아요. 한 번은 날씨가 더워서 막걸리가 쉬었는데 그걸 모르고 나무한테 줬더니 가을에 배 맛에서 신맛이 나더라고요. 한 번은 또 너무 힘들어서 나무에 막걸리를 안 줬더니 사람들이 현명농장 배 맛이 왜 달라졌나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턴 한 해도 안 빼놓고 막걸리를 주고 있어요."


◆출원한 특허만 43개

그는 ‘화성 농업계의 에디슨’으로 불린다. 배농사 관련해 출원한 특허와 실용신안이 43건에 달한다. 정규 교육과정으론 중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농업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학 공부까지 꾸준히 했다. “젊은 시절 농업과 전자·공학 계통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떤 걸 택할지 고민했어요. 만약에 전자·공학 쪽 길을 택했으면 뭔가 해놨을지도 몰라요. 나는 사실 농업보다는 공학에 관심이 더 많아요. 하하.”

배를 감싸는 배 봉지 입구에 필터를 붙여 농약과 먼지, 해충 등이 들어가는 걸 막는 ‘친환경 필터 과일 보호용 봉지’, 배 저장고의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저온저장고 열감지 환기자동화시스템’ 등이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나무와 대화 나누는 칠순 농부

“배나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면서 베푼 만큼 보답받으며 살아온 세월입니다.” 이 대표의 집 옆에 펼쳐진 과수원을 함께 걸었다. 열매마다 배봉지로 싸여있는 나무 가지들이 서로 얽혀 나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대표가 걸음을 멈추고 한 나무를 가리켰다. 그가 ‘부잣집 맏며느리’라고 부르는 나무다. 다른 나무보다 키도 크고 줄기도 굵었다.

“이 나무를 보면 배나무가 진짜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나무들보다 항상 크고 좋은 열매가 많이 열려서 농장에 사람이 찾아올 때마다 보여주면서 자랑했는데 그래선지 40년 넘는 세월 동안 수확이 안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나무도 말을 알아듣는 거 같아요.”

칠순 농부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일을 너무 눈으로 먹어요. 대과(크기가 큰 열매)랑 상처 없이 깨끗한 과일만 좋아하죠. 그러다 보니 농민들은 과일에 상처가 안 나게 하기 위해 봉지를 씌워야 하고 인력도 많이 들고 가격도 높아져요. 봉지를 안 씌우고 키우는 게 맛은 더 좋은데 말이죠. 그러니까 농부들도 보기 좋은 과일을 키우는 데 너무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농장을 떠나기 전 슬그머니 물었다. 압구정동 땅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내려온 걸 후회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지극히 세속적인 질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할머니와 살던 저를 많이 챙겨주시던 분 계셨어요. 지금으로 치면 지역 농협 임원이었는데 절 많이 아끼셨죠. 그분이 어느 날 ‘더 넓은 땅을 구해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해 주셨죠. 그분 말씀대로 지금껏 농사지으면서 잘 살아왔어요. 제 할아버지는 192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고배(배의 한 품종)를 들여오신 분이에요. 3대째 가업을 이으면서 살아오는 삶인데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화성=FARM 홍선표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04288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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