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준 배…당도 최고 1브릭스 높아
국순당 대표 직접 찾아가 양조법 배워
한해 350t 수확…7억~8억원 수익
[ 홍선표 기자 ] 1973년 지금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자리(당시엔 성동구). 스물여섯 살 청년은 이곳에 있는 1만6500㎡(5000여 평) 규모 과수원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과일 농사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이 청년은 과수원을 키우고 싶었다. 이 땅을 3.3㎡(평)당 1만7000원에 팔아 그 돈으로 경기 화성시 비봉면 땅 6만6000여㎡(2만여 평)를 샀다. 가족이 모두 화성으로 이사했다. 국내 대표적 ‘배 명인(名人)’인 이윤현 현명농장 대표(70·사진)의 배 농사 이야기 출발점이다.
매년 막걸리 22t을 빚는다
지난달 말 서해안고속도로 비봉나들목을 빠져나와 500m가량 달리자 현명농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농장엔 이층집 옆으로 배 저장고와 가공공장 등이 있다. 집 뒤로는 7만2600여㎡(2만2000여 평)의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2200여 그루 배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이 농장은 국내 최고 품질의 배가 생산되는 곳으로 꼽힌다. 2009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하는 최고농업기술명인 과수분야 명인으로 뽑혔다.
이 대표는 배 농사를 통해 매년 7억~8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해마다 350여t가량의 배를 수확한다. 이 중 10%는 대만 베트남 등 외국에 수출한다. 이 대표의 배나무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배나무는 매년 그루당 10L가량의 막걸리를 마신다. 이 대표는 매년 22t의 막걸리를 담는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가축 분뇨 비료를 주지 않는다. 대신 쌀겨와 깻묵, 배즙, 골분·혈분·어분, 활성탄 등을 섞은 수제 퇴비를 만들어 쓴다. 천연 재료로 만든 퇴비를 주면 배맛이 더 좋아질 뿐 아니라 토양 오염도 막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이 못 먹는 건 배나무에도 주지 않는다”며 “그게 고품질 배를 재배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나무에 막걸리를 주는 건 배의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막걸리를 퇴비로 주면 당도가 0.5~1브릭스(brix·단맛의 단위)가량 올라간다는 얘기다. 지인이 소나무에 퇴비로 막걸리를 주는 걸 보고 30여 년 전부터 이 방법을 이어오고 있다.
“막걸리 만드는 걸 배우려고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 대표를 찾아갔어요. 저와 아내가 2주 동안 머물면서 배웠죠.”
출원한 특허만 43개
그는 ‘화성 농업계의 에디슨’으로 불린다. 배 농사와 관련해 출원한 특허와 실용신안이 43건에 달한다. 정규 교육과정으로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농업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학 공부까지 꾸준히 했다. 배를 감싸는 배 봉지 입구에 필터를 붙여 농약과 먼지, 해충 등이 들어가는 걸 막는 ‘친환경 필터 과일 보호용 봉지’, 배 저장고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저온저장고 열감지 환기자동화시스템’ 등이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나무와 대화하는 칠순 농부
이 대표의 집 옆에 펼쳐진 과수원을 함께 걸었다. 열매마다 배봉지로 싸여 있는 나뭇가지들이 서로 얽혀 나무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 대표가 걸음을 멈추고 한 나무를 가리켰다. 그가 ‘부잣집 맏며느리’라고 부르는 나무다. 다른 나무보다 키가 크고 줄기도 굵었다. “이 나무를 보면 배나무가 진짜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나무보다 항상 크고 좋은 열매가 많이 열려서 농장에 사람이 찾아올 때마다 보여주면서 자랑했는데 그래서인지 40년 넘는 세월 동안 수확이 좋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화성=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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