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7년 4월20일 선고, 2011두21447 전원합의체 판결)
김승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장학재단이 출연받은 내국법인의 주식에 대해 증여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을까. 장학재단 등 공익법인은 출연받은 재산에 대해 증여세 납부의무가 없다. 공익법인의 활동을 조세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주식이 내국법인(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수의 5%를 초과하는 경우 증여세가 부과된다(‘5% 룰’). 출연자가 공익법인을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만 5%를 초과하는 경우에도 출연자와 내국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공익법인을 간접적인 지배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없는 때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출연자와 내국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출연자 및 그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내국법인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최대주주 요건).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에는 출연을 받은 공익법인도 포함된다. 출연자와 출연을 받은 공익법인이 특수관계에 있는 경우 이들이 내국법인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최대주주 요건이 충족된다. 여기서 출연자와 출연을 받은 공익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인정되는 기준이 문제된다. 이 문제에 관해 대법원은 2017년 4월20일 선고한 ‘2011두21447 판결’에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180억 기부→140억 증여세’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H는 6촌 동생과 함께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장학사업에 사용하도록 모교에 기증하고자 했다. 모교에서 주식을 직접 증여받는 것은 어렵다고 해서, 2003년 K장학재단에 18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했다. 5년이 지나 2008년 과세관청은 H가 수원교차로 주식 5%를 초과해 기부했다는 이유로, K장학재단에 증여세 140억원(가산세 포함)을 부과했다. 이에 K장학재단은 전심 절차를 거쳐 2009년 12월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진행 중에 K장학재단이 증여세를 체납하자 과세관청은 연대납세의무자인 H에게 가산금까지 더해 증여세 225억원을 부과했다.
1심과 2심은 엇갈린 판단을 했다. 1심은 ‘주식의 기부 전에 H가 수원교차로의 지배주주였으므로 증여세 과세요건은 충족되지만, 경제력 세습이 없이 순수하게 장학사업을 위한 것’이라며 K장학재단의 청구를 인용했다. 반면 2심은 입법자가 공익법인의 주식 출연에 대한 정책적 필요성과 우회적인 경제력 승계의 폐해를 막기 위한 필요성을 고려해 주식의 법정한도 초과 기부에 대해 과세요건을 결정했으므로,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사유인 순수한 기부의사만을 이유로 과세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5% 룰’ 해석 방향 제시
대법원은 5년 넘게 치열한 심리를 거쳐 2017년 4월 1, 2심과 다소 다르게 제도적 관점에서 K장학재단의 승소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5% 룰이 상속세나 증여세를 회피하면서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큰 주식 출연행위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5% 룰의 입법취지는 주식 출연 전에 내국법인의 최대주주였던 자의 출연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 출연 후에 내국법인의 최대주주가 되는 자의 출연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출연자와 출연받은 공익법인 사이의 특수관계는 주식이 출연된 후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특수관계의 판단 시점). 그리고 출연자와 공익법인 사이의 특수관계를 가리는 요건으로서 ‘재산을 출연해 비영리법인을 설립한 자’는 비영리법인에 재산을 출연하고 나아가 정관 작성, 이사 선임 등의 설립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봤다(특수관계의 판단요건).
이런 법리에 따라 H가 K장학재단에 수원교차로 주식을 출연한 사실이 있더라도 K장학재단의 설립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K장학재단을 설립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H와 K장학재단은 특수관계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 결과 H의 주식 출연은 증여세 과세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대법원은 판결했다.
‘실질적 지배력’으로 특수관계 판단
특수관계의 판단 시점에 관해, 5% 룰이 출연 이전에 내국법인의 최대주주였던 자의 주식 출연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는 반대의견이 있다. 출연자가 기존에 지배하고 있던 내국법인 주식을 출연함으로써 공익법인을 내국법인의 간접적 승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에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출연자가 기존에 지배하고 있던 내국법인 주식을 공익법인에 출연하기만 하면 곧바로 내국법인의 간접적 승계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내국법인의 간접적 승계는 출연자와 그 특수관계자(공익법인)가 출현 이후에도 내국법인의 최대주주로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주식 출연으로 최대주주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출연자는 공익법인을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출연자와 출연받은 공익법인 사이의 특수관계는 출연 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특수관계의 판단요건에 관해 출연자와 공익법인 사이의 특수관계는 공익법인에 출연을 하면 성립되고, 설립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반대의견이 있다. 공익법인의 설립과정에 상당한 재산을 출연한 자는 구체적인 설립행위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공익법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K장학재단같은 재단법인 운영은 설립 당시 작성된 정관과 최초 선임된 이사에 의해 지배된다. 설립 당시 작성된 재단법인의 정관은 재단법인의 근본규칙으로서 그 운영을 지속적으로 규율한다. 설립 당시 재단법인의 이사들은 사무집행을 하고 후임 이사를 선출해 재단 운영의 계속성을 담당한다. 그런 영향력을 반영하기 위해 법령 규정에 ‘설립’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출연자가 공익법인에 출연하고 정관 작성, 이사 선임 등 설립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 공익법인과 특수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인을 통한 공익법인 우회 지배 우려
위 대법원 판결은 공익법인에 대한 선의의 기부를 장려하면서도 편법적인 제도의 남용은 견제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익법인은 종교, 자선, 학술 기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보완하고 있다. 공익법인에 대한 출연행위는 장려해야 하고, 출연재산은 출연된 목적에 따라 사용돼야 한다. 공익법인이 체납할 경우 출연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연대납세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위험을 떠안으면서까지 기부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출연재산에 증여세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다만 출연자가 공익법인을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이런 규제는 공익법인의 악용을 막기 위해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 규제의 정도 및 수단은 악용을 막기 위해 적절해야 하고 합리적인 범위로 제한돼야 한다. 예컨대 출연자가 이미 설립돼 있는 공익법인 이사장 지위를 차지하거나 지인을 이사에 선임함으로써 공익법인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다. 이 경우도 규제할 필요가 없는지, 그 규제 방법으로 단순히 행정상 제재를 할 것인지, 세법상 증여세 등을 과세할 것인지, 상법상 주식 의결권을 제한할 것인지 등을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편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주식으로 영리법인(주식회사)을 운영하는 것은 공익사업을 영위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반하므로 과세방법보다는 지배력을 제한하는 규제방법을 찾아볼 필요도 있다.
■ 공익법인, 세제혜택 받지만 엄격한 감독 받아
공익법인(公益法人)은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서 사회 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 학자금·장학금 또는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학술, 자선(慈善)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을 말한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되며 각종 세제상의 혜택을 얻고 공익적 견지에 의해 강화된 감독을 받는다. 넓게 보면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을 지칭하는 비영리법인과 유사한데, 공익법인은 비영리법인에 비해 더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설립 허가가 나고, 더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는다. 따라서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이라고 하더라도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허가받은 법인이 아니라면 공익법인은 아니다.
김승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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