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 진실 밝히는
진술분석관을 버티게 하는 건 사명감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이웃 남성으로부터 강제 추행당한 사건을 오래전에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초등학생들에 대한 조사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조사 도중에 지루하다면서 밖으로 나가버리거나 사건과 관련 없는 얘기를 늘어놨기 때문이다. 아동을 조사하는 것은 성인을 조사하는 것과 매우 달랐다.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행 사건의 경우 가해자는 합의 아래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진술이 오락가락해 결국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할 때가 있어 안타까웠다.
이처럼 아동 및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인 학대나 성폭력 사건의 경우 범죄현장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뿐이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건에서 아동과 지적장애인의 진술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진정한 경험에 근거한 진술인지 상상이나 추측에 의해 만들어낸 진술인지를 판별해내는 것이 ‘진술분석’이다.
진술분석은 1950년대 독일과 스웨덴에서 아동이 성적인 학대를 경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발됐다. 진술분석은 면담을 통한 진술자의 진술 확보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술자가 면담자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회상에 의해 진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아동보건 및 발달연구소(NICHD)에서 개발한 면담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기법은 아동의 발달 특성을 고려해 개발됐다.
일반적으로 아동과 지적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건은 해바라기센터에서 피해자의 최초 진술을 듣게 되는데, 경찰 조사에서 진술분석 전문가는 조사과정을 모니터하거나 영상으로 녹화된 진술을 분석하게 된다. 이에 반해 대검찰청 진술분석관은 주로 직접 진술자를 면담하고 사건기록 전반을 검토해 그 진위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때 면담은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아늑하게 조성된 여성·아동조사실에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등 2차 피해 방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진술이 확보되면 진술 내용을 분석한다. 진실한 진술에서 다수 발견된다고 알려진 19개의 준거를 사용하는데 이를 준거기반 내용분석(CBCA)이라고 한다. 그 준거로는 진술이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는가, 세부 정보가 풍부한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주고받은 말을 그대로 재현하는가 등이 활용되고 있다. 준거가 많이 발견될수록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다음에는 진술에 영향을 줬을 다른 요인이 존재하는지, 즉 타당성 분석을 하게 된다. 암시나 유도에 의한 진술은 아닌지, 피해를 허위 혹은 과장 보고해 이득을 얻을 의심스러운 동기가 있는지 등 다양한 요인을 검토한다. 피해자의 진술 확보, 진술내용 분석, 타당성 분석까지 거치면 최종 결과가 도출된다. 대검찰청에서는 분석 오류를 방지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분석관들이 분석 과정과 결과를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실제 만 5세 어린이에 대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어린이의 주의집중력의 곤란과 빈약한 진술능력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검의 진술분석 등을 통해 핵심적인 내용이 일관되며 피해 사실 폭로가 자연스러운 점 등을 토대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아 유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다. 또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을 간음한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지적장애 여부를 몰랐으며 강제력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대검 진술분석 등을 통해 피해자가 핵심적인 피해 상황을 자발적으로 일관되게 진술해 신빙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유죄로 확정된 사례가 있다.
대검찰청에서는 2006년 진술분석관 1명으로 진술분석을 시작해 2014년 12명으로 대폭 증원했다. 하지만 진술분석관의 신분이 계약직이어서 불안하다 보니 전직이 잦은 점은 아쉽다. 진술분석 사건은 대부분 아동이나 지적장애인 대상 성폭행 사건으로, 진술분석관들이 매일 이런 사건을 대하다 보면 심리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검 진술분석관 12명은 국내 유일의 진술분석관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아동, 지적장애인의 호소에 귀 기울이며 오늘도 전국 각지로 출장을 떠나고 있다.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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