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대책
5년간 178조 필요한데…
세입확충 83조 중 세수 자연증가분 60.5조
"경기회복세 이어지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
세출절감 95조…"마른 수건 쥐어짜기" 지적
[ 주용석 기자 ]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5년간(2018~2022년)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돈을 178조원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뚜렷한 증세 계획은 내놓지 않은 채 세출절감과 세입확충만으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한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쓸 돈은 정해져 있는데 증세 없이 그 돈을 마련할 수 있느냐다. 이 때문에 ‘구체성이 떨어진다’거나 ‘장밋빛 계획’이란 지적이 지난 대선 과정은 물론 국정기획위 운영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국정기획위가 19일 발표한 재원 대책 역시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증세 없이 짠 재원 조달 계획
국정기획위가 제시한 178조원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공약집에서 추정한 공약 이행 재원과 총액이 같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달라졌다. 당초 공약집에선 세입개혁(세입확충)으로 66조원, 재정개혁(세출절감)으로 112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정기획위는 세입확충으로 82조6000억원, 세출절감으로 95조4000억원을 조달하는 것으로 바꿨다. 세입확충을 늘려잡고, 세출절감을 줄였다.
세입확충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면 세수 자연증가 60조5000억원, 비과세·감면 정비 등 11조4000억원, 탈루세금 징수 강화 5조7000억원, 세외 수입 5조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 비과세·감면 축소, 카드사 부가가치세 대리납부, 상속·증여세 신고세액 공제율 축소 등이 포함됐다.
세출절감과 관련해선 재량지출을 원칙적으로 10% 절감하고 의무지출 항목에서 새는 돈을 줄여 60조2000억원, 여유자금 활용과 융자사업 이차보전(利差補塡, 정부가 사업자금 전액을 지원하는 대신 정책자금과 시중자금의 이자비용 차이만 메워주는 방식) 전환을 통해 35조2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국정기획위의 생각이다.
◆“구체성 떨어지고 낙관적” 지적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우선 세입확충(82조6000억원)의 73%에 달하는 60조5000억원이 세수 자연증가분이다. 세수 자연증가분은 말 그대로 경기가 좋아 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더 걷히는 것을 말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수 호황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가 꺾이면 이 세수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2012~2014년에는 애초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혀 ‘세수 펑크’가 났다. 구정모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세수 자연증가분을 60조원 이상으로 잡았는데 전제는 경제가 앞으로 5년간 계속 좋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소한 현재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비과세·감면 축소도 말처럼 쉽지 않다. 비과세·감면을 없애려면 관련 법을 바꿔야 하는데 법마다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세출 구조조정도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시각이 많다. 정부 내에서조차 회의적이다. 경제부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도 지하경제 양성화, 지출 효율화, 비과세·감면 축소로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안 됐다. (어느 정부든) 다 자기가 하면 잘될 거라고 장담한다”며 “관료들은 거기에 맞추지만 숫자만 맞출 뿐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문재인 정부 역시 씀씀이가 계속 늘어날 텐데 지출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은 잘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안되면 증세밖에 없지만 국정기획위는 이번에 비과세·감면 축소, 상속·증여세 신고세액 공제율 축소 등 충격이 적은 소극적 증세 조치만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법인세 인상, 경유세 인상,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 세율 인상을 동반하는 대대적 증세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 내년 지방선거 이후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근로소득자의 절반 가까이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을 현실화하는 문제도 중장기 과제로 돌렸다. 국정기획위는 이런 문제를 올 하반기 구성되는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기로 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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