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로 문송시대 깬다]②뜬구름 잡던 문과생, IT '히든카드'로 성장

입력 2017-07-20 08:03   수정 2017-07-24 16:34

호기심에 시작한 코딩, 1000여 고객 확보한 카드뉴스툴로
가난한 예술가 도우려다 창업까지…IT 이용해 '일석이조'




'놀보 먹보 대학생'이라는 말이 있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에 보상이라도 하듯이 논다는 행태를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캠퍼스의 낭만과 자체 휴강(?)의 짜릿함은 덤이었다. 군대가기 전후의 휴식기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낭여행이나 무전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절을 기억하고 직접 경험했던 세대라면 족히 40대 이상일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에서의 모든 활동을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각종 취업동아리부터 경제학회, 심지어는 봉사활동까지 스펙이 된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도 취업 동아리 문을 두드리며 스펙 쌓기에 급급하다. 취업문이 더 좁은 문과생들은 스펙 쌍기가 더욱 치열하다. 자신의 관심사항 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최근 알바몬이 20대 대학생·구직자 26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학창시절 대외활동을 했냐'는 질문에 56.9%가 그렇다고 답했다. 전공별로 살펴보면 사회과학계열이 65.1%로 가장 많았고 인문계열은 58.9%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여기 스펙과는 전혀 관련 없는 활동으로 문과생만의 경쟁력을 키운 정보기술(IT) 창업가들이 있다. 바로 예술분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세븐픽쳐스의 전희재 대표(사진·한양대 파이낸스경영)와 카드뉴스 웹 제작툴 서비스 타일의 이흥현 대표(사진·한양대 광고홍보학)다. 이들은 대학 안밖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문과생만의 IT창업 경쟁력이 됐다고 말한다.

◆ 이흥현 투블루 공동대표, "전공 보다 하고 싶은 일부터"

"학부 시절에는 문과생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생각도 많이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보고요. 실험과 과제로 바쁜 공대생이었다면 오히려 어렵지 않았을까요?"

타일을 서비스하는 이흥현 투블루 공동대표는 학부시절부터 범상치 않았다. 한양대학교에서 광고홍보학과였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대학생 수강신청용 시간표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름보다도 프로그램 운영자 ID로 더 유명할 정도였다.

이 대표는 당시 학교에서 배포한 시간표 프로그램이 불편하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프로그램 개발은 혼자 했다. 전공과는 별도로 평소 컴퓨터를 좋아해 각종 코딩 기술을 독학해온 덕이었다. 이 대표의 프로그램은 학교의 수강신청 프로그램보다 더 널리 사용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이런 성격은 그대로 타일로 이어졌다. 이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카드뉴스 웹제작툴인 타일을 서비스하고 있다. 그는 포토샵을 사용하면서 툴바가 너무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 점에 착안해 만들었다. 복잡한 기능이 있어도 초보자가 사용하는 기능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타일은 디자인을 수치화·규격화해서 자동으로 이용자에게 제시하는 서비스입니다. 누가 사용하더라도 '어 편하네, 카드뉴스 만들기 좋네'라는 생각이 드는 툴을 만들고자하는 게 목표입니다."

타일은 국내 카드뉴스 디자인 자동화 서비스의 원조격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4월 알파버전을 대중에게 공개할 당시만 해도 카드뉴스 디자인을 자동화해주는 툴은 타일 외에 없었다고 했다. 타일은 같은해 10월 유료 서비스로 전환한 이후 월 매출 2000만원 이상을 기록 중이다.

현재 1000여 개 이상 기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타일은 이용자가 제작한 카드뉴스를 동영상 형태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는 사이트에서 동영상 변환 서비스를 체험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 전희재 세븐픽쳐스 대표, "코딩 몰라도 예술 분야 크라우드 펀딩 2위"

한양대학교에서 파이낸스경영(금융 산업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우는 과)을 전공한 전희재 세븐픽쳐스 대표 역시 학부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다른 활동에 집중했다. 성적을 맞춰 선택한 학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동기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동안 그는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이었습니다. 오히려 관심 분야인 연극 활동을 열심히 했죠. 이때 만난 예술가들이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삶이 힘든 예술가들을 도우려다 빈 공간과 작가를 연결해주는 공간매칭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처음부터 창업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수익이 생겼고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 대표는 예술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것 만으로는 이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서비스를 통한 수익 창출도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전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플랫폼을 선택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크라우드(Crowd, 대중)과 자금 펀딩(Funding, 자금조달)을 조합한 말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칭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예술분야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프로젝트 진행자가 이름을 알리기 용이한 동시에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븐픽쳐스가 만들어질 당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이미 국내외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IT 플랫폼이었다. 전 대표는 코딩 등 IT 관련 지식이 전무한 전형적인 문과생 출신이다보니 어떻게 일을 해나갈지가 막막했다.

전 대표는 개발자를 구해 같이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길을 택했다. "코딩을 알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리면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근데 저한테는 기술이 있는 사람을 데려오고 어떤 걸 원하는지 얘기하는 더 중요했어요. 창업자에게 중요한 건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요. IT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븐픽쳐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술가들의 프로젝트를 알리고 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세븐픽쳐스는 후원 규모로 봤을 때 국내 예술 분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중 두 번째로 크다. 세븐픽쳐스에 모이는 후원금은 많게는 월 억 원 단위를 넘어간다. 최근에는 네이버 디자인 등과 제휴를 맺고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전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파피루스'라는 이름의 문학 자판기를 준비 중이다. 지하철역 등에 설치된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랜덤한 문학 작품이 출력되는 형태다. 이용자들은 간편하게 문학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작가들은 자판기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알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적어도 저의 경우엔 기술이 우선은 아니었 던 것 같아요. 세상엔 기술자들은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자기 사업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아이템이 성공할지, 어떤 아이템이 '되는' 아이템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회에 대해서 배우고 나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이런 눈높이를 쌓아가는 게 문과생의 경쟁력이 아닐까요?" (계속)

김소현 한경닷컴 기자 ksh@hankyung.com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그래픽=강동희 한경닷컴 기자 ar491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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