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철저한 준비
통상 압박에 조목조목 반박
[ 손성태 기자 ]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주영훈 경호실장이 한 중동 국가의 2인자가 경호 업무를 배우기 위해 방한할 예정이라고 보고했을 때다. 방한 인물이 경호실장이란 설명이 곁들여지자 장하성 정책실장(사진)이 “근데 왜 2인자입니까”라고 물었다. 주 실장이 “경호실장이 통상 국왕의 비자금을 관리한다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장 실장은 “우리도 관리합니까”라고 다그쳤다. 이어 “그런 돈 있으면 저에게도 좀 주세요”라고 하자 문 대통령을 시작으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장 실장이 이처럼 격의 없는 농담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면서 청와대 회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문 대통령이 주문했던 반론 제기를 자연스롭게 유도함으로써 회의가 활발한 토론 방식을 띨 수 있게 된 것을 장 실장의 공으로 돌리는 참모들이 적지 않다.
장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장에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감한 통상문제를 꺼내들면서 긴장감이 높아지자 장 실장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영어로 설명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철강 자동차분야 무역 불균형을 지적하는 미국 협상팀에 조목조목 양국 수출입 관련 수치를 제시하면서 반박 논리를 폈다. 그는 회담 직후 순방에 동행한 기자단을 찾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에 초점을 맞췄던 기자들과 즉석 토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는 “FTA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 주장을 완벽하게 꺾어 ‘만세’를 부르고 왔는데 우리 기자들은 오히려 ‘재협상’이 시작됐다는 식으로 기사를 쓴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김동연 부총리와 함께 새 정부의 ‘경제 투톱’인 장 실장은 문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그를 중용한 건 재벌개혁 운동을 주도한 경제실천가로서의 경력과 함께 한국 경제의 위기 진단 및 ‘소득 불평등’ 해법을 놓고 공감대를 확인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장 실장은 자신의 저서 《한국자본주의》에서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실질임금이나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기업이 창출한 이익이 분배되지 않고 기업 내부에 유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주창한 소득주도 성장론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꺼내든 부자증세론도 장 실장의 평소 지론이어서 사전 의견 조율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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