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성폭력 피해자에 되레 '꽃뱀'…도 넘은 '3차 가해' 악플러

입력 2017-07-2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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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취하했더니 피의자로 둔갑

수사·재판 과정의 '2차 피해'보다 정신적 측면서 더 심각하고 위험
SNS의 비난성 댓글 '치명적' 성폭력 피해자 41% 자살 시도

경찰 "피해자가 고발 않는 한 제3자 악플러 인지수사 어려워"



[ 박진우 기자 ]
최호식 전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이 지난달 28일 자신의 여비서를 강제 추행할 당시 현장에서 피해자의 탈출을 도왔던 여성 목격자 A씨는 인터넷에서 뜻밖의 ‘마녀사냥’을 당했다. 공개된 폐쇄회로TV(CCTV)에는 모텔에서 뛰쳐나와 택시에 오르려 하는 피해자를 향해 최 전 회장이 뒤쫓아오자 A씨가 막아서는 장면이 찍혔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A씨가 피해자를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로 이끌었다”, “작업당한 느낌인데요”, “4인조 꽃뱀 사기단 아니냐”는 등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악플이 줄줄이 달렸다. 특히 피해자가 최 전 회장과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같은 ‘꽃뱀설’은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결국 참다못한 A씨는 A4 용지 98장 분량의 악성 댓글을 모아 부천 원미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모욕죄 등 혐의를 적용해 A씨가 의뢰한 13명의 네티즌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악플러로 인한 성폭력 피해자의 ‘3차 피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끔찍한 고통의 순간을 재차 떠올려야 하는 ‘2차 피해’를 넘어 이제는 익명의 다수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3차 피해로 번지고 있다는 것. 이 같은 3차 피해는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 측면에서 2차 피해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악플을 달더라도 법원 등에서 무혐의 처리되는 사례가 많아 사후적인 피해자 구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폭력 피해자 절반 ‘자살 고려’

경찰청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적용 건수는 2013년 859건에서 2015년 2662건으로 급증했다. 성폭력 처벌법은 성폭력 사범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2011년 도입된 법이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비난성 댓글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종설 이화여대 교수팀의 ‘성폭력 피해 여성의 지원서비스 이용 경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연구 대상자의 50% 이상이 자살을 고려하고, 41%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시흥에서는 한 여대생이 지난 13일 SNS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지만 도리어 꽃뱀으로 몰려 목숨을 끊은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발견된 유서에는 SNS 이용자 다수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인한 상처의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피해자가 본 댓글에는 “얼마나 꽃뱀 같은지 역겹”,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 “팩트는 모르겠고 그냥 드는 생각이 여자가 남자한테 살살 꼬리쳤는데 잘 안 넘어오니까 자존심이 확 상해버려 엿먹이려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 등이 포함돼 있다.

고소 취하하면 ‘꽃뱀’에 무고죄 피의자?

성폭력 피해자들은 고소를 취하한 것만으로 인터넷에서 무고죄 피의자로 취급받고 있다.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려고 일부러 접근해 관계를 맺은 뒤 고소·고발한 것이라는 추측도 난무한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가족·친구가 수사기관에 참고인으로 불려나와 진술해야 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나 향후 가해자가 자신에게 복수하려 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등으로 인해 고소를 취하하는 사례가 많다.

성폭력 가해자의 무혐의나 무죄 판결이 곧바로 피해자의 무고죄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 성폭행을 당했다며 배우 겸 가수 박유천을 고소한 B씨는 박씨의 무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무고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낸 배심원단의 의견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B씨는 그동안 수많은 네티즌으로부터 꽃뱀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악플 모아 고발해도 ‘솜방망이 처벌’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3차 가해를 한 네티즌은 통상 친고죄인 모욕죄(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와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다. 피해자가 직접 댓글을 찾아내 고발하더라도 보통 30만~50만원 수준의 벌금형에서 끝난다. 형량이 높은 ‘허위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기소되는 사례는 총 6437건(2015년 기준) 가운데 31.5%인 2031건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대부분 피해자 특정이 안 됐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 않고 머리글자나 이니셜만 사용해 욕설했더라도 그 표시가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아이디 당사자가 현실 세계의 특정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욕설을 해도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성폭력 피해자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면 인터넷에서 욕을 해도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의 3차 피해 사건을 수사해야 할 경찰도 정보공개를 극히 꺼리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서 인지를 해야 수사하고 집계하는데 사실상 인지가 안 되는 상태”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체 성폭력 건수에 비해 실제 언론에 공개되는 건수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한 처벌도 안 되는 게 대부분”이라며 “피해자가 고발하지 않는 한 사건에 관계가 없는 제3자(악플러)에 대해서까지 처벌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체나 재산상의 직접적 피해가 없는 정신적 피해에 대해 사회가 둔감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터넷과 SNS를 타고 잘못된 성의식이 여과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엔 뒷담화로 그쳤을 음담패설과 남성 중심적 성의식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과 SNS에서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시행한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여성 44.1%, 남성 54.4%),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여성 42%, 남성 55.2%) 등과 같은 문항에서 남성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50%가 넘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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