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피건의 속도감 있는 지휘, 하델리히의 야성 넘친 협연
풍성한 연주에 갈채 쏟아져
카타르필 오보에 블랑코와 클라리넷 주자 요코자와가
객원으로 참여해 감동 이끌어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매달 소식지 ‘SPO’를 발행한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하델리히의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공연에서 객원지휘를 맡은 제임스 개피건은 SPO 7월호 인터뷰에서 ‘연주곡목 작곡자인 바그너, 버르토크, 멘델스존을 현대 대중음악가에 비유하면’이란 질문에 재밌는 답을 내놨다. 바그너는 “신성하고, 깊이 있고, 잘 짜인 구조”를 갖췄기에 라디오헤드를, 버르토크는 “인간의 원시적인 본능”과 “그 야만성을 숨기려 들기보다 겉으로 순수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멘델스존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잘 다듬어진 기교가 아직 기이한 시도”라는 점에서 초창기 비틀스 같다고 했다. 재치 있는 답변이라기보다 명확한 지휘론을 가진 지휘자란 생각이 들었다.
바그너가 1882년 작곡한 오페라 ‘파르지팔’ 중 ‘성 금요일의 음악’은 이날 공연의 성패를 점치는 시간이었다. 금관악기의 장엄한 울림이 신성한 예배의 시작을 알리듯 초입을 열었다. 오보에 주자는 감미로운 선율로 향을 피워냈다. 클라리넷은 그 향을 좇는 벌이었다. 마침 카타르필하모닉의 오보에 주자 저먼 블랑코와 전 NHK심포니 수석 클라리넷 주자인 요코자와 세이지가 객원으로 참여해 연주를 풍성하게 했다. 개피건은 현과 관의 연결고리를 촘촘히 엮었다. 지휘자 말대로 음악 속의 신성함과 깊이, 그리고 잘 짜인 구조가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듯했다.
이날 하이라이트인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바이올린 주자 아우구스틴 하델리히가 함께했다. 개피건이 말한 “원시적인 본능”은 1악장과 3악장에서 잘 드러났다. 난해한 선율과 기교의 악장이다. 개피건의 지휘는 각 마디의 표정을 정직하고 민첩하게 드러냈다. 하델리히의 연주도 빠르게 적응하며 복잡다단한 화성과 흐름을 보기 좋게 정리해나갔다. 느린 2악장을 연주하는 하델리히는 서정시를 읊는 시인 같았다. 맑은 물에 찻잎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가슴의 심연으로 순도 높은 선율을 심어줬다. 다만 1악장이 끝나자마자 터져나온 박수와 2악장 말미에 벌어진 일부 관객의 소란이 잠깐 감상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델리히와 개피건은 크게 괘념치 않고 연주를 이어갔다. 앵콜곡으로는 파가니니 카프리치오 24번을 선사했다.
2부의 멘델스존 교향곡 5번 ‘종교개혁’에서 지휘자 개피건의 기량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금관악기의 울림이 1517년 종교개혁 발상지인 독일 비텐베르크로 안내하는 듯했다. 현악기들의 긴 울림은 오르간 소리처럼 다가왔다. 구교와 신교의 갈등과 대립을 상징한 1악장에서 개피건은 그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연주였다. 2악장과 3악장은 개혁에 지친 루터에게 마치 잠깐의 휴식을 주려는 듯 차분한 어조로 일관했다. 개피건은 이 곡을 작곡하던 해에 스물한 살이던 청년 멘델스존의 순수함과 힘 있는 사운드를 존중하듯 지휘하며 감동을 이끌어냈다.
이날 공연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기도 했다. 하델리히는 열다섯 살 되던 해 큰 화재 사고를 당했다. 상반신과 얼굴에 여러 차례의 피부이식 수술, 오른팔에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적 수준의 기량은 이런 의지의 선물일 테다. 루터 역시 부패한 교회 권력에 도전한 위인이다. ‘종교개혁’ 교향곡을 통해 그의 활약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에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악장인 데이비드 김이 객원악장으로 나와 객석에 예상치 못한 반가움을 안기기도 했다.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 bst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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