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햄버거병 논란, 감성 아닌 객관적 팩트로 봐야

입력 2017-07-23 17:27  

4세 아이 걸린 용혈성 요독 증후군
햄버거보다는 채소 등 감염 더 많아
과학적 근거 없는 여론몰이 말아야

하상도 <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 >



최근 4세 아이가 병원성 대장균 ‘O157’에 감염돼 생길 수 있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HUS)’에 걸려 신장 기능 90%를 상실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HUS로 진료받은 환자는 187명이다. 그러나 햄버거 패티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는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환자의 10%만이 HUS로 악화할 수 있다고 한다. 즉 HUS는 90% 이상이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다. 세균성 이질균이나 콕사키바이러스 감염, 선천성 보체(면역계의 일종) 결핍 등 유전성 발병이 더 큰 원인이라고 한다.

HUS에 ‘햄버거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93년부터다. 그해 미국 패스트푸드업체 잭인더박스(Jack in the Box)의 햄버거를 먹은 10세 미만 아이 732명이 집단으로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됐다. 네 명이 사망하고 178명이 HUS, 즉 신장이 손상되는 치명적 합병증을 앓으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미국 이야기고, 옛날 이야기다. 근래 이 병 발생 원인이 햄버거라고 확인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채소가 발생 원인으로 많이 지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독일에서 수천 명이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된 사태다. 당시 수백 명이 HUS에 걸렸는데, 원인은 유기농 채소로 지목됐다. 2010년 미국 4개 주(州)에서 약 30명이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돼 세 명이 신부전으로 악화한 사건의 원인도 오염된 상추였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병원성 대장균 식중독 발생 원인을 분석한 결과 김치가 1위였고 그 다음 육류, 음용수, 어패류 순이었다.

과학적 데이터로 보면 한국에서만은 HUS를 ‘햄버거병’이 아니라 ‘김치병’ ‘채소병’이라 부르는 게 옳다. 세계보건기구(WHO)도 HUS의 발병 원인으로 고기 외 채소, 과일, 우유, 요구르트, 치즈 등을 들고 있다.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과의 접촉, 오염된 강물, 호수, 수영장 물놀이를 통해 감염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린 환자 발생은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나 ‘보상’과 ‘원인 규명’은 다른 문제다. 보상은 감성이고 윤리지만, 원인 규명은 과학이다. 전문가 대부분은 햄버거 패티를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보기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보고 있다. 환자의 변호인이 주장하는 내용도 객관적 증거보다 국민의 반미(反美), 반(反)대기업, 반패스트푸드 정서를 자극해 여론몰이로 맥도날드의 무릎을 꿇리고 책임을 지워 보상을 받겠다는 전략이 아닌지 의심된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햄버거 패티는 소고기가 아니라 국산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 돈육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내장을 섞지도 않았다. 환자는 한 명뿐이며, 햄버거 패티에서 장출혈성 대장균이 검출된 것도 아니다. 환자 또한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병 검사를 했으나 모두 음성으로 판명됐다. 조리 과정과 패티 생산공정 전수조사 결과도 문제가 없었다.

식약처가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자가 한 명뿐이어서 가습기 살균제사건처럼 ‘식품안전기본법’에 명시된 국민 불특정 다수와 관련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HACCP 인증 업체에서 햄버거 패티를 납품해 더욱 모호한 처지다.

이번 사건은 환자도, 맥도날드도 모두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환자 피해 입증이 어렵고, 검찰도 처벌 근거를 찾기 쉽지 않아 무혐의가 나올 공산이 크다. 맥도날드는 원인 규명과 관계없이 이미 판매 급감으로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게다가 햄버거를 파는 업체가 어디 맥도날드뿐인가. 분쇄육이 문제라면 동그랑땡, 불고기도 문제라 관련 산업의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이번 사건이 불쌍한 환자를 담보로 여론몰이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상도 <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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