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트코인 열풍, '튤립 버블' 재판될까 우려

입력 2017-07-24 17:48  

"손에 잡히는 자산 없는 비트코인
화폐 아닌 투기상품밖에 안돼
범죄·탈세악용 방지대책도 시급"

한기정 < 보험연구원 원장 >



화폐는 지급수단, 회계단위, 가치저장 등 세 가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화폐가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폐가치가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인정돼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1000원을 받고 사과 하나를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것은 나도 1000원을 주면 사과 하나를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폐에 대한 믿음은 화폐 자체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화폐에 내재된 속성에서 나오기도 한다.

금화나 은화 등이 사용되던 금속화폐 시절을 보면 금이나 은 자체의 가치로 인해 금화와 은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금속화폐는 금이나 은의 공급량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휴대와 보관 등이 어려워 화폐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종이로 만든 법정화폐(이하 화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종이는 그 자체로 금이나 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없지만 일정한 액수가 적힌 종이로 자동차나 다이아몬드도 살 수 있는 것은 화폐 내면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의 중심에 중앙은행이 있다. 중앙은행은 화폐(통화)를 발행하는데, 화폐는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상 부채다. 사회 구성원이 화폐를 들고 중앙은행으로 와서 사과와 바꿔 달라고 하면 중앙은행은 바꿔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화폐가 화폐로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사과를 교환해줄 수 있기 위해서는 사과는 아니더라도 사과와 언제든지 교환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산으로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중앙은행은 그 나라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국채를 대차대조표상 자산으로 갖고 있다. 주식 등 위험자산을 갖고 있으면 주식가치 변동으로 중앙은행이 부채를 전부 상환하지 못하는 위험이 생기고 부동산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갖고 있으면 사과를 즉시 교환해주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며, 이 경우 그 사회의 화폐제도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채는 정부만이 발행할 수 있고 정부 대차대조표상 만기에 갚아야 할 부채다. 국채는 세금으로 상환되기 때문에 정부의 대차대조표상 자산은 조세권이 된다. 중앙은행과 정부의 대차대조표를 합치면 연결 대차대조표상 자산에는 조세권이, 부채에는 화폐만이 남게 된다. 즉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에 대한 믿음의 원천은 정부의 조세권인 것이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여기서 생각할 볼 것이 있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의 원천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금속화폐처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은 가치 변동이 심해서 화폐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고 현대에서는 재화(투자상품)로만 취급되고 있다. 지금의 화폐는 사회가 만들어낸 공동의 부채다. 화폐에 대한 믿음은 공동의 자산인 조세권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도 화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이런 공동의 자산이 있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열광 이외에는 손에 잡히는 자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과거 네덜란드 ‘튤립 거품’ 사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광과 맹신은 한순간에 훅 간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천년만년 가는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김신(공유)이 말했을 때 지은탁(김고은)은 “있다에 한 표”라고 했다. 사랑과는 달리 천년만년 가는 화폐제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비트코인만큼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물론 비트코인은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그룹 내에서 재화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 있다. 비트코인이 거래에 이용될 때 익명성과 거래기록이 노출되지 않으며 국경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죄에 악용되거나 세금탈루 등 법을 회피할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비트코인에 열광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해 보인다.

한기정 < 보험연구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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