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는 '부자증세'가 어떻게 정의인가
굳이 더 거두겠다면 '국민개세' 적용해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부와 여당의 증세안 말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은 정의’라고 존 롤스를 인용했다. 적절한 인용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의 생각이 그토록 정의롭다면 정부와 여당이 정공법을 제쳐둔 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증세 공론화 각본 짜맞추기에 몰두했겠는가.
결론은 소위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을 겨냥한 ‘부자증세’로 났다. 증세는 없다던 경제부총리만 우스워졌다.
세제개혁 논의 과정에서 항상 잊고 넘어가는 게 있다. 증세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원초적 의문과 세금은 넓고 적게 거둘수록 좋다는 흔들릴 수 없는 조세정책의 원칙이다. 이번 증세도 마찬가지다. 중부담-중복지가 거론된다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게다가 납세 대상은 초(超)자를 붙여야 할 정도로 극소수가 아닌가. 이런 망각도 없다.
대상을 이렇게 잡은 것부터가 정의롭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세금을 더 내야 할 사람이나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세금을 안 내고 있어 분명하게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공평 과세는 촛불정국의 국민 명령”이라는 주장에 이르면 정부가 생각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누가 봐도 정치적 부담을 덜고 여당 표를 다지기 위한 증세안일 뿐이다. 정의라 할 수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불쾌감이 적고 간단한 방법으로 세금을 거두려 든다. 그래서 늘 만지작거리는 게 법인세다. 투표권이 없으니 아무리 걷어도 괜찮다. 내년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은 없다. 오히려 대기업이 소득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리는 처지니 도움이 되면 될 것이다.
초고소득자도 다르지 않다. 근로소득만 따지면 6680명, 종합·양도소득까지 따져도 4만6000명 정도라고 한다. “국민의 0.08%에 불과한 ‘슈퍼 리치’에 대한 증세는 포용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여당의 주장은 그대로가 선거 표어다.
잃어봐야 4만6000표다. 따지고 보면 애초 정부에 도움이 된 표도 아니다. 무척 간단한 속셈이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거두는 게 얼마일까. 3조8000억원이라고 한다. 별 볼 일 없는 효과다. 그런데도 무리하는 것은 ‘부자가 세금을 더 낸다’는 틀을 짜고 싶어서일까. 그렇다면 ‘징벌적 증세’다.
복지는 더 많은 납세자가 뒷받침해야 한다. 고율의 세금이 아니다. 법인세부터 그렇다. 세수가 더 필요하다면 세율을 올리는 대신 비과세·감면을 철폐해 실효세율을 올리는 작업이 급선무다. 관련 조항을 한 줄도 못 고치는 건 국회의원의 지역구 이해관계, 즉 정치 탓이지만 말이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47%다. 무려 810만 명이다. 면세자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없다. 고소득 자영업자 소득적출률은 43%다. 소득의 절반을 신고하지 않는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면세자들에게도 소액이나마 의무를 지게 하고 자영업자와 전문직의 탈루만 막아도 이번 증세안이 노리는 세수 목표는 채우고도 넘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못 박았다. “임기 내 서민 증세는 없다.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고 말이다.
솔직해져야 한다. 대부분 나라가 소득세와 법인세율은 낮추고 소비세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민 개세(皆稅)다.
국내 전문가들도 굳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가가치세를 건드리는 게 옳다고 말한다. 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관료들부터 이렇게 주장한다. 1%포인트만 올려도 6조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세라는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그의 저서 《경제 철학의 전환》에 복지 확대 등을 위해서는 부가세 등 소비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썼다. 부가세가 소득 역진적이라면 세율을 이중구조로 가져가면 된다는 구체안도 나온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이들의 주장이다.
부가세에 해당되지 않는 유권자는 없다. 이게 부자증세보다 훨씬 정의에 가깝다. ‘핀셋 증세’로 편 가르기 하는 정치는 옳지 않다. 질투는 때로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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