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러·터키 '입김' 세진 발칸…EU의 최대 우환

입력 2017-07-27 18:32  

민족주의 부추기는 러-터키
세르비아, 러 지원 업고 보스니아 합병 나설 수도
알바니아는 터키와 손잡고 마케도니아 독립 시도 가능성

EU"내코가 석자"
미군 확대 등 도움 원하지만 "수십년 안보 무임승차 누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설득이 과제



[ 양준영 기자 ] 최근 비공개 싱크탱크 회의에서 한 독일 관료는 ‘유럽의 어떤 문제를 가장 우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칸 반도 서부라고 대답했다. 터키와 러시아가 긴장을 높이면서 새로운 위기가 태동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러시아와 터키가 발칸 반도의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에 있는 대리인들을 부추겨 이 지역의 국경을 새로 설정하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 정부는 세르비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보스니아를 합병할 수 있다. 터키의 지원에 힘입어 알바니아는 알바니아인이 많이 사는 코소보에서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에서도 비슷한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마케도니아 내 소수민족인 알바니아인들도 모국과 재결합하기를 원한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대(大)알바니아주의’ 지지자들이 차지한 영토 중 일부는 세르비아에 있기 때문에 양국이 새로운 지도에 동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비록 이런 생각이 외교장관보다는 007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을 고무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전혀 불가능한 결과는 아니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잠재적 악당들이 요즘 세계 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중대한 현실이 있다. 발칸 반도는 해체되고 있으며, 서방은 이제 러시아가 개입하는 것 이상을 우려해야 한다. 터키는 ‘이름뿐인 나토(NINO·NATO in Name Only)’ 회원국이 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터키의 깊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더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터키와 러시아는 독일 및 유럽연합(EU)과 대립하며 결속력을 다져왔다. 러시아인들은 나토를 싫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유럽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러시아에 EU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여긴다. 터키 역시 EU에 등을 돌려왔고, 독일과 그 동맹국에 맞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러시아와 터키 입장에서 볼 때 발칸 반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위험과 비용이 드는 만큼 포기하기 쉽지 않다.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보스니아 등의 EU 가입 가능성은 발칸 서부 지역의 ‘깨지기 쉬운’ 평화를 지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들은 러시아나 터키와 동맹을 맺는 것보다 EU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단기간에 EU 회원국이 될 것이란 희망은 사라지고 있다. 유럽은 영국을 잃게 되며, 헝가리 폴란드 등 회원국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 28개 회원국(머지 않아 27개국)은 다루기 힘든 발칸 5개국을 회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별로 없다. 연합체를 점점 더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예산이 늘어날 시점에 이들 나라에 대한 재정 지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은 서방이 자신들을 외면하고 떠난다면 동쪽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고 암시한다. 이는 러시아와 터키의 지원에 힘입어 민족주의 의제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발칸 반도에서 새로운 혼란이 발생한다면 EU에는 재앙이 될 것이다. 난민, 범죄, 발칸 무슬림들 사이에서의 급진주의, 적대국들의 영향력 확대 기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EU는 발칸 반도를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고 독일인들은 말한다.

미국이 기꺼이 협조할 것인가? 독일 편하자고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의 분쟁에 관여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생각하는 현명한 외교 정책은 결코 아니다. 범대서양주의자였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조차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분쟁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2년 동안 고생했다. 트럼프는 개입에 훨씬 더 회의적이고, 발칸 반도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리아에 보여준 것처럼 냉담하게 대할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실수다. 발칸 반도에서의 분쟁은 다른 곳의 큰 문제와 비교하면 사소하지만 발칸 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항상 발칸 반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리고 EU뿐만 아니라 나토도 발칸 반도의 유혈사태에 의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위기는 수십 년 동안 미국과 EU의 관계를 재정립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유럽인들은 적극적인 외교와 코소보 주둔 미군 확대와 같은 비교적 작고, 단기적인 투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대통령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외교 정책에서 갖고 있는 핵심적인 신념은 ‘미국 덕분에 동맹국들이 수십년 동안 무임승차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발칸 반도의 평화를 걱정하는 유럽인들은 회의적인 백악관을 참여시키기 위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나토의 결속, 자유의 수호, 러시아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독일은 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정리=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월터 러셀 미드 < 미국 바드대 교수·허드슨연구소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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