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밀어붙인 실용주의자
"WTO 상소위원 물러나…어렵게 차지한 한국 몫 스스로 버린 셈" 논란
농민단체 등 반대 목소리
[ 이태훈/조미현 기자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 통상현안을 지휘할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김현종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한국외국어대 교수)이 30일 임명됐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는 통상장관(minister of trade) 역할을 한다. 김 신임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FTA 협상을 이끌었는데 10년 만에 같은 자리로 돌아와 개정 협상을 담당하게 됐다. 하지만 한·미 FTA에 부정적인 농민단체와 시민단체가 김 본부장 임명에 반대했고, 한국인이 어렵게 차지한 WTO 상소기구 위원 자리를 스스로 버린 셈이 돼 이번 인사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의 ‘실용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층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 체결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김 본부장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평가가 있다. 김병연 전 노르웨이 대사의 아들인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WTO에서 통상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3년 2월 당선인 신분이던 노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와서 통상 문제 브리핑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한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개방형 통상국가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브리핑 내용을 감명 깊게 들은 노 전 대통령은 김 본부장에게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1급)을 맡겼다. 김 본부장은 이듬해 45세 나이에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칠레에서 열린 한·미 통상장관회담에서 FTA 사전 실무점검회의 개최에 합의하며 FTA 체결의 물꼬를 텄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2007년까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일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 본부장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지만 경제에서는 개방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했다.
◆WTO 위원 자리 없어지나
김 본부장은 지난해 4월 총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권유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인천 계양갑에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졌다. 올해 대선 기간에는 문재인 캠프의 외교자문그룹인 ‘국민아그레망’에서 활동했다.
그가 통상교섭본부장 하마평에 오르자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25일 “김 본부장은 농민의 고통과 호소를 외면하고 한·미 FTA를 추진한 장본인”이라는 내용의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 9개 시민단체도 다음날 그의 임명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김 본부장이 WTO 상소기구 위원 임기(4년)를 3년 넘게 남기고 사직하는 것도 정부에는 부담이다. 장승화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5월 미국 측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며 한국인 WTO 상소기구 위원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으로 그해 12월 김 본부장이 선임됐는데 7개월 만에 스스로 물러나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무역 분쟁이 많아 WTO 최종심 재판관에 해당하는 상소기구 위원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라며 “중국 일본 등의 견제 때문에 한국인이 다시 위원으로 뽑힌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 약력
△1959년 서울 출생
△미국 윌브램먼슨고, 컬럼비아대 국제정치학과 졸업, 컬럼비아대 로스쿨 박사
△세계무역기구(WTO) 법률국 수석고문변호사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유엔 대사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
△WTO 상소기구 위원
이태훈/조미현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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