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시선 넘어서…'택시운전사' 송강호, 좋은 작품에 대한 소신 (인터뷰)

입력 2017-08-02 08:47   수정 2017-08-02 09:24

영화 '택시운전사' 만섭 역 송강호 인터뷰

"'택시운전사' 정치적이지 않아 더 끌려"
"블랙리스트 후 위축감 있었지만 소신 꺾지 못해"



송강호는 송강호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이름 석 자가 스스로를 설명한다. 배우로서 그는 참 한결같고, 기복이 없다. 대중의 기대치가 높을 때면 더 위를 향해 발버둥 치다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배우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송강호는 송강호를 뛰어넘는다.


영화 '변호인'부터 '사도', '밀정'까지. 최근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굵직한 시대극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1980년대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격랑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택시운전사'라는 그의 선택지가 조금은 의아했다.

"시대극을 선호해서는 아니고, 한국 영화계에도 시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현대물을 계속해서 촬영할 때가 있었고, 좀 지칠 때 쯤 어느 순간 사극으로, 시대극으로, 이제 근현대사를 다루는 지점이 온 것 아닐까요?"

송강호는 영화계에 소재가 고갈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주목하는 점은 신선한 이야기와 시선이다.

"연이어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변호인', '밀정'과 같은 작품에는 현대물에서 발견할 수 없는 에너지와 그 시대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하며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연장선에 있는 듯 합니다."

2일 개봉된 '택시운전사'를 통해 송강호는 다시 한번 시대의 얼굴이 됐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우연히 직면한 소시민을 연기했다.

그는 '변호인' 당시 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한동안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소재를 담은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위축감들은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나 제작진, 감독, 투자사들의 '좋은 작품에 대한 소신'은 꺾지 못합니다. '변호인' 때는 환경 자체가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지요."


송강호는 사실 '택시운전사'를 고사했다가 출연하게 됐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김지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작업할 때도 처음엔 '오케이' 했다가 거절하고, 결국 영화를 찍은 경험이 몇 번 있다. 그는 껄껄 웃으며 "경솔한 사람은 아니"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이유들은 각기 틀린데 JSA 때는 좀 어릴 때라 그런 것 같고, '복수는 나의 것'은 생경한 작품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와 택시운전사'는 같은 맥락의 이유에선데 영화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정치적인 두려움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내가 과연 이 거대한 사건의 아픔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혹시나 누를 끼지지 않을까.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느라 그랬습니다. 허허."

그는 작품에 대한 어떤 열망이 결국엔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습니까? 대답을 빨리하는 사람이요. 저는 충무로에서 대답을 제일 빨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다가도 "빨리 대답하는게 감독과 제작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의형제', '고지전'의 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송강호는 이 영화에서 11살 딸을 키우는 홀아비 택시운전사 만섭 역을 맡았다. 만섭은 광주를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외국 기자 손님을 태우고 길을 나선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배운 짧은 영어로 독일 출신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과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들어선다. 신군부가 언론을 통제해 폭도로 몰아간 이들은 평범한 광주의 학생, 시민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만섭의 눈은 미세하게 떨렸다.

"시사회 때 가장 슬펐던 장면은, 아무것도 모르고 만섭이 광주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주던 신이었습니다. 정부는 '폭도'라고 했지만 시민들은 해맑은 얼굴로 배고픈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고 할아버지의 주도로 놀이판도 벌어지죠. 아름다운 모임이었고 건강한 목소리였는데 탄압으로 많은 분이 희생됐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만섭은 한 군인(엄태구 분)의 방관으로 광주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지만 결국 광주로 유턴하고 만다. 서울서 홀로 기다릴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고 말한다. 스크린 속 만섭은 혼동이 일렁이는 얼굴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광주로 가야 한다고.

"엄태구 배우가 나오는 신이 이 영화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실화이기도 하고요. 광주의, 광주 시민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군인의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상징적이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송강호는 이들 장면이 정치적이지 않아서 끌린다고 고백했다. 엄청난 정의감에 불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한다는 것.

"내가 태운 손님이 사지에 있습니다. 죽음의 땅인데 나만 살자고 손님을 두고 왔다는 것이 택시기사로서의 윤리적 측면도 있지만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나 싶어요. 나의 안위가 중요하다면 타인의 삶도 중요하지요. 과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80년 광주의 아픔은 어떤 누가 극복했나, 정치가가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인내하고 인간의 도리를 잃지 않고 끝까지 살아왔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는 시사회 당시 광주 시민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이 회자되자 그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거듭 설명했다.

"제가 어떤 대표성을 가지고, 배우이기에 거창한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니라 어찌 됐던 그 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속에 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구나 가져야 할 작은 빚이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희생과 정신들이 켜켜히 쌓여 지난해와 같은 과정도 있었고, 그분들의 희생과 안타까움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소박한 마음에서 드린 말이에요."

이 영화는 개인의 삶을 할퀸 비극적인 사건을 각자의 양심과 결단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실화를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목도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영화를 통해 관객의 인식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사실 저 자신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몰랐던 사실, 사건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시사회 후 연로한 부모님도 '정말 저랬어?'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시대를 관통한 분이지만 잘못 알고 있다든지, 왜곡된 정보가 지금까지 계속 된거죠. 주 관객층은 그 시대를 거쳐오지 않았습니다. 교과서 속 교육을 통해 어렴풋이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작품으로 보고 느꼈으면 해요. 교육이라는 측면보다는 역사를 알길 바라는 것,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지만 정확하게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송강호는 "올해로 영화만 21년 차"라며 그간의 시간을 회고했다. 그 또한 사람인지라 슬럼프도 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시간이 오지요. 대부분 쉬기도 하지만, 그게 또 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저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은 작품을 통해섭니다. 직장인들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직한다고 해서 그게 해결이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직한 회사가 더 나쁠 수도 있고요. 인생은 정면돌파가 맞는 것 같습니다. 하하"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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