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북한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상태로 치달았다. 한국군과 미군엔 전면전 대비태세인 ‘데프콘 3’가 발령됐다. 북한의 김일성도 ‘북풍 1호(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미국이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와 B-52 전략폭격기 등을 한반도로 급파하자 김일성이 유감 표명을 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당시 미군의 북한군 통신 감청 결과 ‘김일성이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출동에 겁을 먹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일은 한·미 군사훈련 기간엔 전국 20여 곳에 있는 자신의 ‘특각(전용 별장)’ 지하벙커를 옮겨 다니며 숨어지냈다. 특히 미군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랩터)가 언제, 어디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외형적으로는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2013년 8월 한·미 훈련 기간 중 그는 서해 최전방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남조선 벌초’ 등 호전적 언동을 해 주목받았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군 전략폭격기 B-1B 두 대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지난달 30일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경축연회에 참석했다. 김정은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민들에게 ‘대담함’을 보여 줘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의도라고 우리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김정은도 미군의 제거작전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특각 지하벙커를 아버지 때보다 더 많이, 더 깊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이달 중순께 핵추진 항공모함 두 척을 한반도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5월 말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을 한 지 70여 일 만의 파견이다. 항공모함은 미군의 대표적 ‘전략자산(strategic asset)’이다. 전략자산은 적의 지휘부와 군사기지, 방위산업 시설 등 전쟁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목표를 타격하는 무기체계를 뜻한다. 항공모함 외에도 핵잠수함, B-52·B-1B·B-2 전략폭격기, F-22 전투기 등이 있다. 모두 북한이 겁낼 만할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미국은 최근 세계에서 가장 큰 차세대 핵항공모함까지 공개했다. 중국도 항공모함과 스텔스 전투기 등 전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군의 전략자산에 비해선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빈번해졌다. 주 목적은 북한을 무력으로 압박해 추가 도발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미군이 실제 공격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내성(耐性)이 생긴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묘수는 없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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