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평범한 숲을 10만명 찾는 관광지로 바꾼 여자…이지영 씨의 '스토리 경영'

입력 2017-08-03 15:56   수정 2017-08-03 16:37


이 숲의 나무 뿌리는 유달리 넙적한 것들이 많다. 용암이 흐르다 바위가 된 땅. 깊이 뿌리내릴 흙이 없기에 뿌리에 더 힘을 주며 자란 것이다. 사람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줘 버티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나무는 돌과 뿌리가 한 몸 같다. 돌을 다 쪼개지 못해 껴안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아파도 결국 상처가 굳은살이 되도록 끌어안고 사는 우리네 삶과 닮았다.

제주도의 곶자왈 공원 ‘환상숲’은 이야기를 품은 숲이다. 6년 전 이형철 환상숲 대표가 숲 이야기를 들려주며 입장료를 받아보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혀를 찼다. ‘주변에 널린 게 곶자왈(제주 원시림)인데 누가 돈 내고 오겠냐’는 것. 하지만 숲은 어느새 제주의 명물이 됐다. 문을 연 첫해 5000명이 찾았고 지난해 방문객은 10만명까지 늘었다. 교육?체험농장의 성공사례로 불리는 환상숲의 이지영 숲지기(부대표)를 인터뷰했다. 환상숲 공원을 꾸린 경험과 ‘농장에 스토리를 입히는 법’에 대해 들었다. (지영 씨는 이 대표의 딸이다)

◆흔한 숲에 이야기를 입히디

▷어떤 생각으로 숲을 개방했나요.

“이 숲은 저희 가족이 23년 전 사둔 땅입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숲이었지요. 처음엔 아버지가 돈을 받지 않고 재미삼아 숲 안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숲을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숲 해설을 충실히 하되 입장료를 받으면 어떨까 했습니다. 유료화를 하면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더 많이 늘었습니다. 지금은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교육농장,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스타농장이 됐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인 매력이 무엇일까요.

“대개 숲에 오면 식물 이름이 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식물에 대해 다 알지 못하고 가르쳐드려야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대신 저는 우선 숲을 찬찬히 걸어보라고 합니다. 식물의 이름보다는 이 나무는 어떻게 생겼는지, 이 척박한 땅에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게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역경을 꿋꿋이 버텨내는 곶자왈의 식물들을 보면 자신도 그처럼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숲이 가지고 있는 그런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닮은 숲 이야기

▷예를 들면 어떤 이야기입니까.

“저희 숲엔 ‘갈등의 길’이 있습니다. 갈등(葛藤)의 어원은 칡(葛)과 등나무(藤)입니다. 칡은 오른쪽으로 나무 줄기를 감고 올라가는데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갑니다. 그래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얼키고 설킨 모습을 갈등이라고 하지요. 저희 숲에서도 칡과 등나무는 서로 살기 위해 아둥바둥합니다. 갈등 끝에 죽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어서는 부엽토를 만들어 다른 식물에게 도움을 줍니다. 숲도 사람들 삶에서처럼 갈등을 겪지만 죽어서는 결국 상생하는 겁니다.”

▷사람 사는 모양과 비슷하네요.

“나무를 타고 기어올라가는 아이비(두릅나무과 식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줄기는 하나인데 어떤 잎은 얄쌍한 손바닥 모양이고, 다른 잎은 넙적한 하트 모양입니다. 손바닥 모양은 사람으로 치면 10대 아이, 하트 모양은 40대 중년입니다. 10대 잎은 예쁜 게 좋아서 거울을 보면서 날씬하게 살다가, 40대가 되면서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펑퍼짐해진 겁니다. 주변을 돌보기 위해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부족한 우리네 중년들의 삶과 비슷하지 않나요.”

▷그런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아버지가 직접 숲에 길을 내시면서 느끼셨던 것들이 그대로 환상숲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제가 그 과정을 도왔습니다. 저는 원래 서울 지역아카데미에서 농촌교육농장 컨설팅 일을 했습니다. 환상숲 스토리는 아버지 부탁으로 제주에 내려와 20여일동안 함께 제작한 겁니다. 전국의 다양한 농장에서 서로 다른 품목과 주제를 가지고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경험이 좋은 훈련이 됐습니다. 실제로 농장들이 운영되는 사례들을 보고 평가 단계까지 접하다보니 가닥을 잡기 쉬웠습니다. 같이 일했던 박사님들과 연구원들이 해온 연구들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농장 일에 스토리를 입히는 방법

▷환상숲은 교육농장의 좋은 모델로 꼽힙니다.

“저희도 더 발전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대상으로 교육농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처음엔 처음 방문하는 학교만 대상으로 했습니다. 지금은 10회 프로그램 등 다회차 프로그램도 꾸립니다. 계속 프로그램을 진화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근 보성초 금악초 아이들은 매달 환상숲을 방문합니다. 창의, 인성교육에서부터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진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학년별, 계절별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운영 경험들이 쌓이니 그게 그대로 농장의 자산이 됐습니다. ”

▷처음부터 사람들이 환상숲을 많이 찾았습니까.

“초반엔 50대인 저희 아버지가 해설하고, 80대 저희 할머니가 매표를 하셨습니다. 홍보도 제대로 안 했으니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주차장에도 차 한대가 없는데, 지나가던 분들이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셨나봅니다. 그럼 저희 할머니께서 “여기 좋은 숲이야. 들어와, 들어와” 하고 손짓하십니다. 약간 꺼림칙한 마음으로 들어와보면 50대 아저씨가 안내를 해주겠다며 어두컴컴한 숲 안으로 들어갑니다. 초창기엔 손님들이 '그냥 돌아가면 안될까요' 하고 나와버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달 수입이 20만원밖에 안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둘씩 찾아주신 분들이 환상숲의 스토리를 좋아해주시면서 입소문이 났고, 지금의 환상숲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농장에 스토리를 엮는 방법을 조언한다면.

“스토리를 만들려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작목에 관심이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편한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야합니다. 단순히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들도 따로 정리를 하면 또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때그때 내가 기르는 작목이나 농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메모를 하는 게 좋습니다. 이 메모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많이 이야기를 나눠야합니다. 교육을 듣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농촌교육농장 교사양성과정과 농어촌 체험지도사과정을 들었습니다.”

▷SNS 마케팅 노하우를 알고싶어하는 농장들도 많습니다.

“저는 SNS를 통한 단순 알림과 홍보성 광고에는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있습니다. 대신 SNS에서 숲을 찾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저희 가족이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방문객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갑니다. 마음을 다해 소통하고,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가족끼리 농사를 짓고 숲을 운영하는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 속에 녹아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일에 SNS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사람에서 시작된다

▷농촌이 달라지고 있는 걸 느낍니까.

“흔히들 6차산업이라고 하지요. 농촌에서 체험도 하고 숙박도 하고, 직판도 하고 가공도 하면서 농부들도 예전과는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농촌을 찾은 방문객들은 실컷 체험을 하고 난 후에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갑니다. “힘들지? 그러니까 너도 공부 열심히 해!"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사무실 안에서 편한 일을 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밖에서 땀 흘린다는 인식 자체부터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요.

“농부나 어부부터가 본인들이 그냥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루하루 행하는 일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아야합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경관을 지키며, 우리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또 그들이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학교 현장에서도 배워야 하고요. 이렇게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만 제대로 잡혀도 사람들이 농어촌을 기피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교육부터 제대로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합니까.

“요즘 농촌을 보다보면 지원사업만 찾아다니는 가짜 농부, 가짜 어부들도 꽤 보입니다. 어렵다며 정부에 손만 벌리며 하드웨어나 시설 투자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정부가 단순히 하드웨어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농어촌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이나 연구를 지원하는 일에 더 신경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인재들이 농어촌에 몰리면 경쟁력있는 작물도 자연스럽게 개발되고 신기술이나 시설재배 방법도 발전할 겁니다. 농어촌에 새로운 활력이 생길 겁니다.”

FARM 고은이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03445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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