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많이 올랐고 ELS는 불안하고…채권으로 눈돌리는 자산가

입력 2017-08-03 17:55   수정 2017-08-04 05:30

고금리 채권에 '뭉칫돈'

1억 이상 '뭉칫돈' 채권에 투자
"금리 연 3% 이상 채권 없어서 못팔아"
위험 낮은 항공사 ABS 등 '완판 행진'



[ 이태호/서기열 기자 ] 지난달 24~25일 두산인프라코어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일반 청약에 무려 8조1184억원의 뭉칫돈이 들어왔다. 모집금액 3480억원의 23배를 웃도는 규모다. 분기마다 지급하는 이자가 연 2%에 불과한데도 거액자산가가 대거 몰렸다. 연 1.2% 수준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은 데다 신주인수권증서(워런트)까지 받을 수 있어서다.


변동성 커진 주식시장과 과열 논란에 빠진 부동산을 피해 회사채로 관심을 돌리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기업의 부도위험이 낮아진 상황에서 꾸준히 예금을 웃도는 고정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연 3%면 충분히 매력적”

자산가들은 기대 수익이 연 3% 안팎에 불과하더라도 부도위험이 낮다고 판단하면 채권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회사채를 고수익 재테크 수단으로 취급해 연 5% 이상 고위험 회사채에만 관심을 두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올해 1~7월 증권사 창구를 통해 가장 많이 매수한 채권은 삼성중공업 91회였다. 표면금리(액면금액 기준 금리)가 연 2.51%다. 조선업 경기가 최악을 지났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78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채권 투자자들은 주로 40대 이상 거액자산가로 1억원 이상 단위로 채권을 매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채권 소매판매 담당자는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 발행하는 금리 연 3% 이상 채권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거액자산가들이 오랜 저금리에 적응하면서 회사채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연 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난해 연 1.25%까지 꾸준히 하락한 뒤 13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직접 신용위험 대비 금리 매력을 분석해 종목을 골라 담는 ‘스마트’한 투자도 늘고 있다. 담보자산을 갖춰 손실위험이 비교적 낮은 항공사 자산유동화증권(ABS)이 지난해부터 발행 수일 만에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 4월 대한항공이 장래매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칼제십일차 1-1회는 200억원어치 가운데 149억원어치가 발행 당일 개인투자자에게 팔렸다. 만기는 1년3개월, 금리는 연 3%짜리 채권이다.

한화생명보험 신종자본증권, 기업은행 조건부자본증권처럼 새로 등장한 채권들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모으고 있다. 회사가 적자를 내면 이자를 받지 못하는 등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연 3~4%대 이자수익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판단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결과다.

◆중수익 시장에서 ELS 등 대체

전문가들은 회사채가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을 대체하면서 소위 ‘중위험 중수익’을 노리는 재테크 시장에서 꾸준히 비중을 키워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채권은 파생상품처럼 상품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투자자가 직접 위험 분석도 할 수 있다”며 “최근 정체기에 빠진 ELS 시장을 대체할 투자처로 개인투자자의 관심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말 ELS 발행잔액은 64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감소했다.

경기 회복 기대가 확산되면서 취약업종 채권 발행이 늘고 있는 것도 중위험 중수익을 노리는 개인투자자에게는 매력적이다. 지난달 5년 만에 등장한 두산중공업 회사채는 청약금액의 절반(300억원어치)이 개인 대상 재판매를 목적으로 참여한 증권사 물량이었다. 올해 개인투자자 매수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6개 종목은 SK건설 SK해운 포스코건설 등 취약업종 채권이다.

금리가 지난해보다 다소 오른 상태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채권 투자자들에겐 호재다. 3일 신용등급 ‘A-’ 2년물 평균 금리는 연 2.85%로 작년 말 연 2.50% 안팎에 비해 0.30%포인트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 정기예금(2년) 금리는 연 1.2% 수준에서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태호/서기열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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