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서 지혜로… 2017 '지적 패러다임'이 바뀐다

입력 2017-08-04 17:42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 김희경 기자 ]
4개월에 19만~29만원. 매달 한 번 독서 모임 ‘트레바리’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돈이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책값 외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그러나 현재 트레바리 회원 수는 1500명. 다음 시즌(9~12월)엔 2500명에 달할 전망이다. 모집 마감까지 한 달여가 남았는데도 신청자가 1000명이 넘었다. 혼자 책을 읽어도 될 텐데 굳이 돈을 주고 독서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에선 각각의 모임을 ‘클럽’이라고 한다. 주제별로 나눠진 클럽은 86개에 달한다. 영화, 음악, 문학, 과학부터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모임, 시대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임까지 있다.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공동주문생산 플랫폼 운영) 대표, 박성제 쿠르베(스피커 제조업체) 대표, 김상헌 네이버 고문 등 전문가 20여 명이 클럽장으로 있는 모임도 있다. 사람들은 모임 전 독후감을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글을 쓰며 정리하고, 의견을 나누며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트레바리뿐 아니다. 출판사 창비의 ‘책읽는당’이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독서 모임의 회원 수는 1만5000명에 달한다. 최인아책방 등 동네 서점에서 열리는 세미나도 매번 사람들로 가득 찬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지적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할 만하다. ‘지식’에 머물러 있던 지적 욕망이 이제 ‘지혜’를 향하고 있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풀거나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고 싶다면 혼자 책을 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최근엔 취업 등 특정 목표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시간을 쪼개 독서 모임에 나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지혜에 다다르려 한다. 뚜렷한 정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것이다.

글쓰기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글쓰기는 일부 지식인 또는 타고난 문장력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젠 대중의 일반적 취미가 되고 있다. 에세이, 시 등 글쓰기 강의는 일찌감치 마감되며 관련 책들도 큰 인기를 얻고있다.

지적 패러다임 전환은 경제 상황 변화와 맞물려 있다. 산업화 시대엔 교과서 등에 나온 정형화된 지식을 최대한 많이 암기하는 게 중요했다. 역사가 던지는 질문과 의미는 뒤로 한 채 조선의 왕 이름을 단순히 ‘태정태세문단세…’로 외웠다. 정보화 시대로 넘어온 후엔 ‘검색’이란 게 생기면서 지식의 범위가 확장됐다. 하지만 이 또한 지식의 분화가 이뤄지는 수준에 불과했을 뿐 지혜에 다다르진 않았다.

지혜를 구하는 움직임은 역설적이게도 ‘아포리아(aporia)’ 상태에서 탄생했다. 아포리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탈출구가 없는 난관을 의미한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아포리아 상태로 규정하기도 했다. 독서 모임과 글쓰기 열풍의 출발점이 지난해 하반기였던 점이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적 혼란과 함께 취업난 등 경기 침체로 앞이 막막할 때 사람들은 글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전쟁 등이 한창일 때 스스로를 찾기 위한 철학이 꽃피었던 것처럼.

답답한 현실에 힘겨워하고 있다면 책을 펴고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의 문장이 당신에게 새로운 문이 될 수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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