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학을 토사구팽시켜서는 안 된다

입력 2017-08-06 17:46  

사립유치원이 주축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이달 들어 ‘대정부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휴원 단행’까지 결의했다.(한경 8월5일자 A1, 5면) 24%가량 되는 국공립유치원 비중을 현 정부 임기 중에 40%로 늘리겠다는 정책에 대한 반대다. 정부 복안대로 되면 4291개 중 1000개가 문을 닫아야 한다니 사립유치원들이 위기감을 가질 만도 하다.

차제에 사학(私學) 전반에 대해 사회적으로 깊은 성찰과 성숙한 발전 논의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당장 ‘실력 행사’에 나선 곳은 유치원들이지만 중·고교, 대학까지 사학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심각하다. 자율형 사립고·외국어고 폐지론, 지방 국립대 집중육성책, 8년째 등록금 동결, 입시전형료 인하 등 일련의 교육 정책을 따라가면 숨이 가쁠 지경이다.

이쯤에서 우리 사학이 걸어온 길을 차분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굴곡의 근현대사에서 사학의 ‘인재보국(報國)’이 없었다면 산업화도 민주화도 어려웠을 것이다. 근대와 개화에 뒤처졌던 시기, 고종(高宗) 부처의 내탕금 등으로 보성 진명 숙명 양정 같은 근대 사학이 시작됐다. 서양 선교사들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사학을 키웠고, 민족자본가와 교육선각자들은 학교 설립으로 독립 국가를 도모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독립운동이라 여기고 학교를 세워 달라”며 각지에 읍소해 세운 게 한국의 사립학교들이다.

그렇게 사학들은 공립학교에 뒤질세라 인재를 길러냈고,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사학이 공립학교를 보완하고 때로는 리드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보편적 전통이다. ‘아이비리그’가 앞서는 미국이 그렇고, 한때 강력한 국가사회를 표방했던 일본이나 영국도 그렇다.

물론 몇몇 사학재단의 추태는 우리가 봐온 그대로다. 하지만 관선이사제 등을 통한 교육당국의 강력한 감독권으로 한국의 사학은 늘 정부 통제권 안에 있었다.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으로 중·고교의 경우 명실상부한 사학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에겐 학교선택권, 학교에는 학생선발권’이라는 기본 원리가 수십 년째 부정되면서 건학이념도, 학교별 특성도 없어지고 있다. 정부 지원금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립 대학도 그렇게 내몰리는 중이다. 정부 예산에 한 푼 기대지 않고 그 틈을 메꿔 보겠다는 자사고는 겨우 정착 단계에서 정부발 폐지론에 위기를 맞고 있다.

사학을 적폐세력 다루듯 해선 안 된다. 공립과 사립을 대립구도로 만들거나 학교 제도를 국공립 테두리에만 가두겠다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도 맞지 않다. 사학에 더 많은 자율을 주면서 공립과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게 맞다. ‘수월성 교육 철폐’라는 구호가 한국을 이만큼 키워온 사학에 대한 토사구팽 정책이 돼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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