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법정 최고금리

입력 2017-08-07 18:20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2008년 충남 부여 쌍북리에서 길이 81㎝, 너비 2.3㎝의 목간(木簡)이 발견됐다. 이 백제 목간은 서기 618년(혹은 558년) 좌관이라는 관청(혹은 관리)이 10명에게 곡식을 빌려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곡식을 돌려받을 때 이자로 5할(割)을 더 받은 점이다. 고려 이후의 고리대금 역사는 《고려사》 등 사료를 종합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잘 정리해놓고 있다. 일반 사채는 5할, 내수사 중심의 공채는 3할이 기준이었다.

고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나라에서 서민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한 이율이 대개 5할이었다. 일본에서는 춘궁기에 5할은 특혜로 여겨졌고, 이를 더 높은 이자로 다른 사람에게 다시 빌려주는 거래도 있었다고 한다. (김용만 《한국의 생활사》)

빌린 뒤 이자 갚기는 서양 세계라고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중세 기독교는 이자를 죄악시했지만, ‘십일조’로 볼 때 최대한 관대했을 경우 1할이 기준이라는 설도 있다. 유대인의 긴 수난사도 고리대금업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매 7년 끝에 면제하라’(구약 신명기)는 성경 대목을 보면 고리대금은 인류의 경제활동만큼이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근대 이전에는 대금·대부업은 으레 고리(高利)가 되면서 베니스의 유대인 상인 샤일록과 같은 극단적 이미지로 수백 년 이상 이어졌다.

현대의 경제학은 이자에 대한 인식과 철학을 완전히 바꿨다. 금리는 생산의 촉진제요, 자본 축적으로 고도의 산업사회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힘이다. 구한말 개항과 더불어 서양식 은행제도가 들어오면서 전근대적 고리대금 관행은 서서히 사라졌다. 동시에 화폐가 제대로 보급되면서 돈과 이자도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값(금리)이 오르내리는 일종의 상품이라는 지식이 보편화됐다.

고대·중세적 고리대금의 오랜 기억 때문일까. 현대의 대부업도 시련이 만만찮은 금융업이다. 사업자로 등록하고 세금을 내는 현대 금융의 한 영역이지만, 감독 강도(强度)에 따라 존폐가 왔다갔다 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비싼 값으로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그만큼 비싼 가격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업 구조 자체가 큰 리스크다. 떼이는 곳도 많고, 추심비용 같은 영업비도 더 드는 돈장사다.

이들에게 족쇄가 더 죄어진다.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로 내리는 대부업법 시행령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저금리 시대라지만 2002년 연 66%와 비교하면 꽤 많이 떨어졌다. 200만 명에 달하는 대부업체 이용자들 숨통은 조금이라도 트일지 모르겠다. 걱정인 것은 정부가 정한 이 가격(금리)으로는 수지를 못 맞춘다며 문 닫는 대부업체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이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어두운 뒷골목에서 샤일록을 만나지나 않을까 두렵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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