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개헌은 각 정파의 '동상이몽' 푸는 고차 방정식

입력 2017-08-08 18:44   수정 2017-08-09 07:03

야당, 대통령 외치·총리 내치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 가닥
여당, 지방 분권·책임총리제 강화…대통령 4년 중임제 선호
정당명부제 등 정파 이해 걸린 선거구제 협상도 변수



7개월 남은 개헌 협상…속도 못내는 정치권

‘헌법 개정 열차’가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 처리가 목표다. 30년 만의 개헌에 물리적 걸림돌은 없다. 이미 국회 개헌 정족수(찬성 의원 200명)를 넘겼고,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약속 이행을 거듭 확인함에 따라 ‘대통령 반대’라는 최대 변수도 사라졌다. 정치권의 결단만 남겨놓고 있다. 지방선거까지는 10개월이 남았다. 국민투표 절차(20일 공고 후 60일 내 의결)를 감안하면 7개월 내에 개헌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빠듯하지만 국회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대 복병은 권력구조(정부 형태)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줄여야 한다는 원론에는 공감하지만 각론에선 생각이 다르다.

권한을 줄인 대통령 4년 중임제(더불어민주당)와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반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야당)로 맞서 있다. 개헌은 각 정파의 이해가 걸린 선거구제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선거구제 합의는 개헌의 전제조건이다. 개헌은 말 그대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권의 ‘동상이몽’을 풀어내는 고차 방정식이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이달 말부터 한 달간 전국 순회 토론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까지 큰 틀의 쟁점조율을 마치고 내년 2월까지 단일안을 마련한다는 스케줄을 내놨다. 여야가 합의 도출에 실패하는 상황이 온다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도 있다.

개헌 논의는 기본권과 환경권, 지방분권 등 지난 30년간의 사회 변화상을 담아내야 한다는 필요성과 함께 현 대통령제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정치권의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들의 끝은 한결같이 좋지 않았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는 방증이다. 개헌 논의의 중심에 서온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역대 대통령의 불행은 현행 5년 대통령 단임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은 개헌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환경권·생명권 등 기본권 신설

개헌의 핵심 화두는 분권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에 대거 이양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본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더하는 게 개헌 논의의 기본 줄기다. 지난 1월5일 출범한 개헌특위 제1소위는 국민 기본권·지방분권·경제·재정 등을, 제2소위는 정부형태·정당·선거제도·사법부 등을 다룬다. 1소위는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 경제·사회적 여건 변화를 반영하고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안전에 대한 권리와 소비자의 권리 및 문화생활 향유권, 환경권, 정보 접근권, 생명권 등의 분야를 헌법에 새로이 담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평등권을 강화하기 위해 차별금지 사유에 인종, 연령, 언어, 장애 등을 추가하기로 공감대를 이뤘다.

지방분권 강화라는 원론에는 의견일치를 봤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자치입법권·자치행정권·자치재정권·자치복지권 등 4대 지방자치권 보장 여부가 쟁점이다. 이양 폭을 놓고는 이견이 적지 않다.


촛불집회, 5·18 추가여부 논란

안희정 충남지사는 ‘자치분권 국무회의’(제2 국무회의) 신설과 현재 17개인 광역자치단체의 축소 조정을 주문했다. 17개 시·도를 통폐합해 최소 500만 명 규모의 광역 지방정부로 재편하자는 것이다. 특위는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회가 예산 편성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사법분야에선 판·검사의 전관예우를 금지할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대법원장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법관이 정년까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임기제를 폐지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장 산하 법원행정처를 없애고 헌법상 독립된 최고기관으로 ‘사법평의회’를 신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헌법전문에 5·18민주화운동, 촛불집회 등의 역사적 사실을 추가할지 여부는 논란거리다.

2소위는 쟁점이 많아 논의 속도가 느린 편이다. 최대 쟁점은 정부 형태다. 특위는 국민 대토론회 때 제시할 정부 형태로 대통령 중심제와 혼합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세 가지를 제시하기로 했다. 내각제는 국민 다수가 부정적이어서 채택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민주당의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야당의 분권형 대통령제로 압축된다. 대통령 권한을 얼마만큼 줄이느냐가 협상 포인트다.

벌써부터 여야 간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대토론회 배포자료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문구를 넣을지를 놓고 벌인 여야 신경전에 양측의 시각차가 묻어난다. 차기 집권까지 바라보는 민주당은 대통령이 전체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반면 여건이 불리하다고 보는 야당은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생각이다.

중앙 정부 권한 이양폭 이견

당론이 없는 민주당은 대통령 권한 축소를 전제로 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한을 지방분권제, 책임총리제, 국회 권한 강화, 사법권 독립 강화 등을 통해 권력을 분산시키는 선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자는 문 대통령의 생각과 거의 같다.

야당의 분권형 대통령제와는 차이가 크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 외교 국방 정보 등 외치를 맡고, 내치는 행정수반이 되는 총리(국회에서 선출되는 다수당 대표)에게 맡기자는 게 야당의 구상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내치를 총리에게 맡기느냐 여부다.

물론 타협의 여지는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국회의원 선거구제가 바뀌면 대통령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수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결국 대통령 권한 축소를 어느 선에서 합의하느냐가 관건이다. 민주당이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수용한다면 큰 틀에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예상된다.

여야 합의 실패땐 대통령 나설수도

물론 국회의원의 거취와 직결된 선거구제 합의가 대전제다. 선거구제 문제가 풀려야 정부 형태 합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선거구제는 각 당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설 수 있는 갈등 포인트다. 문 대통령은 소선거제(지역구)와 정당득표에 따른 비례대표제를 결합한 독일식 정당명부제 또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다. 국민의당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다. 안 지사도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제도는 다당제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여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선호할 수 있다. 한국당은 그간 소선거구제 유지 방침을 고수해왔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중·대 선거구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얽히고설킨 각 정파의 선거구제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다.

국회가 풀지 못하면 직접 나서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정치권의 합의를 압박하는 또 다른 변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의원들의 3분의 2가 찬성하고 개헌특위가 가동되고 있는 데다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강한 만큼 개헌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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