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법인 사후관리 소홀 악용
후원금은 외제차·요트파티 '펑펑'
복지시설선 허위영수증 발행도
[ 구은서 기자 ] 결손 아동을 후원한다고 속여 기부금 128억원을 가로챈 사기전과 17범의 기부단체 회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비영리 사단법인의 사후관리가 소홀한 점을 악용한 ‘기부금 사기’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상습사기 등의 혐의로 기부단체 회장 윤모씨(54)와 대표 김모씨(37)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1일 밝혔다. 법인 관계자 네 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윤씨 등은 2014년부터 비영리 사단법인 ‘OOO씨앗’과, 똑같은 이름의 주식회사를 함께 운영하며 4만9000여 명으로부터 기부금 128억4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수도권에 콜센터 21개를 열고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정기 후원을 요청했다. 경찰이 입수한 ‘통화 대본’에 따르면 이들은 스스로를 ‘교육후원단체’로 소개하고 “어려운 환경의 지역아동과 ‘일촌맺기’로 1 대 1 후원을 해달라”고 권했다. 취지에 공감한 기부자들은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1600만원을 선뜻 내놨다.
하지만 OOO씨앗의 복지시설 기부액은 전체 기부금의 1.7%(약 2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현금이 아니라 인터넷 영어 강의를 볼 수 있는 회원계정(ID)이나 강의가 담긴 태블릿PC를 싼값에 구매해 전달했다. 한 복지시설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비즈니스 영어회화 등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콘텐츠여서 나중엔 ‘필요없으니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윤모씨 등은 기부자들을 속이기 위해 아동 사진까지 동원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회원들이 낸 기부금을 전달했다며 보육원 아동들의 사진, 손편지 등을 올려뒀지만 해당 아동들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후원금이 절박한 복지시설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범행에 동조했다. 복지시설 한 곳당 많아야 100만~200만원가량의 지원을 받았지만 10억원짜리 영수증을 발행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복지시설이 소규모여서 국세청 모니터링 대상에서도 빠져 있었다.
이렇게 빼돌린 기부금으로 윤씨는 시가 9억원 상당의 서울 시내 아파트와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호화 생활을 즐겼다. 직원들과 해외 요트파티를 열기도 했다.
현행법상 비영리 사단법인은 정부 허가가 있어야 설립할 수 있지만 현장 실사나 활동 보고 등 사후 점검에 대한 법적 의무는 없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2014년 당시 지방자치단체가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관리를 맡았지만 서울시청 담당자는 단 한 명이었다. 현재 아동 관련 비영리 사단법인 업무를 보는 여성가족부 담당자 역시 두 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관할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은 90여 곳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 이후 단체를 감시하거나 검증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금 사기가 반복되면 기부단체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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