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사람들은 기다렸다네
와인과 함께할 '맛있는 시간'을
1991년 구소련서 독립한 작은 나라 수호성인 '조지'를 나라이름으로 삼아
기원전 2000년전부터 와인 제조
동굴에 와인 저장고 만든 전통 방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
조지아 최대 와이너리인 카헤티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크베브리'
금빛 머금어 '오렌지 와인'으로도 불려
갓 구운 빵에 각양각색 치즈 얹어 한입
강렬하고도 달콤한 맛…조지아와 닮아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
러시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는 조지아를 두고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그곳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이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했다. 러시아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 음식은 하나하나가 시(詩)와 같다”고 예찬했다. 지금도 조지아를 여행하는 이들은 스위스처럼 순수한 자연과 이탈리아처럼 맛있는 요리, 프랑스보다 유서 깊은 와인, 그리고 한없이 친절한 조지아 사람들에게 반하곤 한다. 작은 나라 조지아의 매력엔 끝이 없다고 감탄하면서.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
코카서스 산맥 아래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 조지아(Georgia)에 간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을 떠올렸다. 반은 미국에 가느냐고 반색했고, 나머지 반은 거기가 어디냐 반문했다. 코카서스 3국 중 조지아라고 해도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단 한 친구만이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 유서 깊은 와인 잔뜩 마시고 와!”라며 여행 정보를 귀띔해 줬다.
아직은 낯선 조지아는 러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으로 둘러싸인 작은 나라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 산맥 남쪽에 있어서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 더불어 코카서스 3국이라 불린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유럽과 아시아의 교두보에 있어 수많은 외침을 당했다.
가장 오래 조지아를 점령했던 나라는 러시아다. 1918년 러시아 제국 멸망 후 조지아공화국으로 독립했으나 1922년에 소비에트연방에 흡수되고 말았다. 1991년 구소련연방에서 독립하기 전까지는 러시아식 이름인 ‘그루지야’로 불렸다. 조지아는 더 이상 그루지야로 불리길 거부하는 이 나라의 영어식 이름이다. 조지아라는 이름의 유래는 수호성인 게오르기우스의 영어식 이름 ‘조지’에서 찾을 수 있다. 국명을 수호성인 이름에서 따왔을 만큼 조지아인들은 신앙심이 깊다. 이슬람교 국가들 박해에도 기독교의 일파인 조지아정교를 유지해 왔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마다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성당이 그 증거다. 조지아정교의 십자가는 포도 줄기로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니노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성모마리아로부터 포도나무 십자가를 받은 성 니노는 꿈에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하라고 계시를 받았다.
조지아의 포도 재배 역사는 조지아정교보다 더 오래됐다. 기원전 2000년 전부터는 으깬 포도를 점토 항아리에 넣고 땅에 묻어 발효시킨 와인을 만들었다. 기원전 1000년대 철기시대에 형성돼 9~11세기까지 번성했던 동굴 도시 우플리치헤(Uplistsikhe)에도 와인 저장고가 남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와인을 크레브리 와인이라 부른다. 조지아 특유의 크베브리(qvevri) 와인 양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됐다. 고로, 조지아 여행의 한 축은 조지아정교회를 둘러보는 것, 또 한 축은 메이드 인 조지아 와인과 음식을 맛보는 것이라 하겠다.
1600년 고도, 트빌리시의 뜨거운 환영
트빌리시(Tbilisi)는 5세기 이래 조지아의 수도다. 1600년 고도(古都) 트빌리시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므크라비 강 도심을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고, 강 옆 깎아 지른 절벽 위 메테키(Metekhi) 교회는 이 도시를 찾는 모든 이들을 환영하듯 굽어보고 있다. 강변에는 한눈에 봐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강 위에는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를 연상케 하는 평화의 다리가 놓여 있다. 강 건너에는 케이블카가 산 정상의 요새를 향해 비상 중이다. 그렇게 중세 성당과 현대적인 다리 등 각기 다른 시대 건축들이 중첩돼 있다.
트빌리시를 한눈에 담고 싶어 메테키 교회로 향했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메테키 교회에 얽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5세기에 교회로 지어졌으나 17~18세기 이슬람에 의해 요새로 사용됐고, 구소련 시절엔 감옥으로 쓰여 스탈린이 투옥되기도 했다. 1980년대 말 조지아 총대주교가 교회 복구 운동을 벌인 끝에 비로소 조지아 정교회 역할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메테키 교회는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며 아픈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당 앞에는 트빌리시로 수도를 천도한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의 기마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르가살리 왕이 매와 함께 꿩 사냥에 나섰는데 꿩을 쫓던 매와 쫓기던 꿩이 숲속 뜨거운 연못에 떨어져 죽었다. 그 모습을 본 왕이 숲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도시를 세우라고 명했다. 그 숲이 지금의 트빌리시고, 뜨거운 연못은 메테키 교회 건너편의 유황 온천이다. 트빌리시는 조지아어로 ‘뜨거운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강 건너에는 볼록한 돔 모양 지붕의 유황 온천들이 성업 중이다. 계곡에서 발원한 천연 온천으로 유황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데, 조지아 돈으로 5라리면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러시아 시인 푸시킨도 온천을 즐기고 갔다. 이를 증명하듯 한 온천의 간판에는 ‘세상에 이곳보다 좋은 온천은 없다’는 글귀와 푸시킨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온천 옆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폭포가 쏟아지는 협곡을 볼 수 있다. 협곡 위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오래된 집들도 볼거리다.
반면 온천 옆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어머니의 요새’라 불리는 나리칼라(Narikala)에 닿는다. 나리칼라는 도시가 형성될 무렵 방어를 목적으로 지어진 고대 유적인데, 7~8세기에 아랍인들이 그 안에 궁과 사원을 세워 그 규모가 더 커졌다. 보다 편하게 풍경을 감상하며 요새에 오르려면 므크라비 강변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거리에서 숯불에 고기 굽는 향이 번져왔다. 이제, 푸시킨이 극찬한 조지아 음식을 맛볼 차례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강가의 레스토랑에서도 연기를 피우며 조지아식 바비큐인 츠와디를 굽고 있었다. 러시아어로 ‘샤슬릭’이라고도 불리는 츠와디는 고기를 잘라 소금, 후추, 와인 등으로 간을 알맞게 한 다음 쇠꼬챙이에 꽂아 굽는 요리다. 조지아에선 포도나무 가지로 불을 피운 뒤 그 잔열에 익히는 것이 특징이다.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는 물론 주변 이슬람 국가와 달리 돼지고기 츠와디도 맛볼 수 있다. 츠와디만큼이나
많이 먹는 요리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조지아식 치즈 피자로 통하는 카차푸리다. 밀가루 반죽 안에 치즈를 듬뿍 넣고 오븐이나 화덕에 구워 조지아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각종 치즈와 치즈를 넣어 만든 요리가 착착 테이블에 놓였다. 그 사이 레스토랑 앞 무대에선 라이브 밴드와 춤 공연이 끊이질 않았다. 음악이 빨라지고 춤이 역동적일수록 와인 잔을 부딪치는 소리도 경쾌해졌다.
항아리 숙성 와인을 찾아서
조지아에는 크게 카헤티, 카르틀리, 이메레티, 라차 네 곳의 와인 생산 지역이 있다. 그중 최대 생산지는 카헤티로 이름난 와이너리가 많다. 카헤티에서도 20년 알렉산더 챕채바 왕자가 19세기 프랑스 샤토를 본떠 만든 유서 깊은 와이너리, 샤토 제가니(Chateau Zegaani)를 찾기로 했다. 트빌리시를 떠난 지 두 시간쯤 지나자 창밖으로 포도밭이 펼쳐졌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완만한 비탈에서 어린 포도가 영글고 있었다. 샤토 제가니에 도착하자 와이너리 오너 타투라스흐빌리(Tatulashvili) 가족이 대문 밖까지 마중 나와 일행을 반겼다. 싱그러운 정원을 지나 고풍스러운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와인 저장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장고 한쪽에선 오크통에서 와인이 익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는 땅 속에 점토 항아리가 묻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조지아 정통 와인 저장고였다. 가까이서 보니 김치를 장독에 넣고 땅에 묻어 발효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샤토 제가니는 토착 품종인 사페라비와 무쿠자니로 유기농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양조법으로 만든 크베브리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데 금빛이 나 ‘오렌지 와인’(사진)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와인을 증류해서 만드는 파프리(Pappri)로 옛 기법 그대로 제조하고 있어요. 파프리 만드는 기구를 본 다음 음식과 함께 시음해볼까요?”
분명 시음이라고 했는데, 어제의 저녁 식사가 예고편이라면 본편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음식이 차려져 있다. 조지아에는 손님이 오면 식탁 바닥이 보이지 않게 음식을 차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좋아하고, 대접을 중요시하는 조지아 특유의 문화 덕이다. 이때 치즈는 빠져서는 안 될 메뉴다. 식탁에 앉는 순간, 갓 구운 옥수수빵과 각양각색의 치즈, 치즈 들어간 다채로운 요리가 줄지어 나왔다. 하나같이 샤토 제가니에서 만든 와인과 잘 어우러졌다. 디저트로 어마어마한 양의 살구와 수박이 식탁에 올랐을 때쯤 파프리를 내왔다. 독주(毒酒)였지만 집에서 직접 만든 호두 잼과 함께 맛보니 강렬하고도 달콤했다.
절벽 위 피어난 사랑의 마을, 시그나기
코카서스 산맥의 매력 중 하나는 웅대한 산맥을 따라 달리다 만나게 되는 작은 마을에 있다.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길, 산 아래 작은 마을을 찾아 시그나기에 들렀다. 터키어로 ‘피란처’란 뜻의 시그나기는 해발 800m 가파른 산 위에 둥지를 튼 성곽 마을이다. 4㎞ 남짓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마을의 시간은 마치 중세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골목 안에는 와인이나 카펫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2000명 남짓 되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양식으로 카펫을 짜거나 조지아 요리와 와인을 팔며 삶을 이어간다.
오래전 성벽에는 23개의 타워가 있어 페르시아에서 침략했을 때 인근 마을 사람들의 대피소로 쓰였단다. 마을 꼭대기에 오르자 주홍색 지붕 너머로 알라자니 평야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였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날려줬다. 오래전 실크로드를 따라 교역을 하던 상인들도 코카서스 산맥을 넘은 뒤 이 풍경을 바라보며 쉬어 갔으리라.
“시그나기의 별명이 ‘사랑의 마을’인 것 아세요? 여기서는 24시간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요. 주례도 언제든 부를 수 있고요.” 가이드의 설명에 깜짝 놀랐다. 이 작은 산골 마을이 조지아판 라스베이거스란 말 아닌가. 전쟁의 피란처가 사랑의 도피처(?)로 변신한 셈이다.
시그나기에서 2㎞쯤 떨어진 가파른 산 위에는 성 니노가 잠든 보드베 수도원이 있다. 조지아인들이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성 니노는 보드베 계곡에서 살다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묻힌 곳에 수도원이 세워졌다. 꽃이 만발한 성당 정원은 성지 순례를 위해 수도원을 찾아온 조지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순례자의 어깨 위에도, 여행자의 어깨 위에도 크베브리 와인처럼 금빛 찬란한 햇살이 쏟아졌다.
여행정보
인천 국제공항에서 조지아 트빌리시 공항까지는 직항이 없다. 카자흐스탄 국적기 에어아스타나를 타고 아스타나를 거치면 편리하다. 에어아스타나의 스톱오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까지 둘러보는 1석2조 여행도 즐길 수 있다. 아스타나에서 트빌리시까지는 약 4시간 걸린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5시간 느리며 언어는 조지아어와 러시아어를, 통화는 라리(1GEL)를 쓴다. 1라리는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 한다. 대한민국 여권으로 비자 없이 90일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조지아=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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