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大 글로벌 경쟁 질주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
정부·정치권 발목잡기 넘어야
[ 황정환 기자 ] 서울대는 직원들이 전부 퇴근한 오후 8시 전후면 본관 정문을 나무막대기로 끼워 잠근다. 시흥캠퍼스 반대 학생들의 재점거를 우려해서다. 10년을 허송세월한 시흥캠퍼스 사업은 최근 본격 추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200여 일 본관 점거 등의 내홍을 겪고서야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전초기지의 길이 확정됐다.
많은 사람들은 시흥캠퍼스 사태를 학교와 학생 간 갈등으로 이해한다.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교직원과 물리적으로 격하게 부딪친 인상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대학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의 충돌이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전통적 인식과 산학혁신의 전진기지여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의 대립이다.
시흥캠퍼스 반대론자들은 대학의 순수성이 지켜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에서 후원받는 연구는 필연적으로 진리와 동떨어질 것이란 우려다. 옥시레킷벤키저에 유리한 가습기 살균제 실험보고서를 써 준 혐의로 수의대 교수가 재판받는 현실을 거론한다. 반대 학생들 뒤에는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교수들과 정치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비즈니스 논리를 경원시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본다. 예일, 버클리대 등과 공동캠퍼스를 구축한 싱가포르국립대와 중국 칭화대 등 경쟁자들의 질주가 서울대의 마음을 급하게 한다. 양적 팽창을 도외시하고는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다. 시흥시에서 땅 66만㎡를 무상으로 받고, 신도시개발사업자 한라에서 3000억원의 건설비를 지원받는 시흥캠퍼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학생들의 주적이 됐지만 성낙인 서울대 총장도 2014년 8월 총장직에 오르기 전에는 ‘상아탑파’에 가까웠다. 취임 후 3년이 되도록 시흥캠퍼스 추진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한 이유도 그런 동조의 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 총장은 작년 9월 미국 실리콘밸리 방문을 계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곳 기업들의 ‘인재전쟁’과 산학협력을 통해 최고 명문이 된 스탠퍼드대의 혁신을 목격하고서다. “천지가 개벽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성 총장의 소감이다.
시흥캠퍼스 사업이 막 본궤도로 복귀했지만 갈 길은 멀다. 서울대에선 기초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 하나 개설하는 데도 1년 반이 걸린다. 지원금을 미끼로 대학을 통제하려는 정부 행태도 정권을 불문하고 계속되고 있다. ‘학벌 철폐’와 ‘사교육 해소’를 앞세워 국내 유일의 ‘세계 30위권 대학’을 다른 국공립대와 통합하겠다는 ‘서울대 폐지론’의 생명력도 여전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발목 잡기라는 더 큰 장애물을 돌파하기 위해 신발끈을 다시 조여야 할 시점이다.
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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