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으로 부상한 비트코인… 북한 리스크에 4000달러 돌파

입력 2017-08-14 17:59  

자고나면 오르는 가상화폐 '디지털 세상의 금'으로

트럼프 군사행동 언급 40시간 만에 20% 급등…거래량 절반이 엔화
정부 불신이 자금 유입 '부채질'…가상화폐 시총 1370억달러 사상최대
월가서도 가상화폐 존재감 커져…'비트코인 ETF' 상장 검토



[ 허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경고 수위가 고조되면서 비트코인 가상화폐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미국 국채나 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비트코인에도 자금이 급격히 쏠리고 있다. 한때 ‘신기루’로 불렸던 가상화폐가 ‘디지털 세상의 금’으로 부상하는 상황이다. 미국 월가도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인정하며 발 빠르게 고객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다.

◆일본 투자자가 급등세 이끌어

디지털화폐 정보제공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13일 협정 세계시(UTC) 기준 오전 8시20분께 4208달러까지 치솟았다. 3500달러 안팎에 머무르던 가격은 40시간 만에 19.34%(683달러) 급등했다. 이후 14일(오전 5시 기준) 4033달러로 소폭 하락하며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11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적 해법이 장전됐다”고 적은 트위터 내용이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면서 인접국인 일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으로 몰렸다. CNBC에 따르면 13일 비트코인 거래량 가운데 엔화 비중은 46%로 하루 전(30%)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이 밖에 미국 달러 거래량은 25%,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 비중은 각각 12%가량으로 집계됐다.

올초 1000달러로 시작한 비트코인은 5월과 6월 잇따라 2000달러, 3000달러를 돌파했지만 거품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2000달러(7월16일) 밑으로 곤두박질치며 큰 변동성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을 시험 발사한 뒤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안전자산’ 테마에 올라탔다. 지난 1일 비트코인이 기존의 비트코인(BTC)과 비트코인 캐시(BCC)로 분리되는 일까지 겹치면서 5일 3000달러를 넘어선 지 8일 만에 다시 4000달러를 돌파했다.

원화 거래량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시가총액 2위의 가상화폐인 이더리움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 위협을 계속하면 ‘화염과 분노’에 휩싸일 것이라고 경고한 직후인 10일 이더리움은 4% 오르며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정학적 위기에 비트코인 혜택

시장 전문가들은 글로벌 주식과 채권에서 빠져나간 돈이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와 금 외에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로도 몰렸다고 분석했다. 디지털자산 컨설팅업체인 BKCM의 브라이언 켈리 대표는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비트코인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주말인 12~13일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의 전체 시가총액이 110억달러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인 1370억달러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시총도 690억달러를 찍으며 또다시 기록을 세웠다.

비트코인과 금의 차이점은 공급량에 있다. 비트코인 공급량은 2100만 개로 제한될 전망이다. 반면 금은 가격 인상에 따라 채굴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정부 통화 및 정책에 대한 불신이 투자자들을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시장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와 남중국해 위기가 고조되면서 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비트코인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처럼 저유가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베네수엘라에선 2014~2016년 자국 내 비트코인거래소 이용자 수가 수백 명에서 8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피델리티, 비트코인 자산으로 인정

북핵 위기로 자본시장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비트코인이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가상화폐에 대한 월가의 시각도 우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미국 S&P500지수의 기술주 섹터는 1.56% 낙폭을 나타내며 지난 4개월 중 최악의 성적을 냈다.

미국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는 지난주부터 업계 최초로 고객이 보유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내역을 자사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회사는 “가상화폐에 대해 더 많이 배우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기관투자가들도 더 이상 가상화폐를 무시하기 힘들게 됐다”고 밝혔다.

제도권에서 비트코인 관련 상품도 출시될 예정이다. 미국 최대 옵션거래소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최근 비트코인 파생상품 출시 계획을 밝혔다. 3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승인을 불허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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