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권력 맞선 소수자… 4인4색 SF

입력 2017-08-14 18:39   수정 2017-08-17 18:07

듀나·김보영·배명훈·장강명
중편집 '아직 우리에겐…' 출간



[ 심성미 기자 ] 국내 대표 SF 작가인 듀나, 김보영, 배명훈과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 장강명이 뭉쳤다. 신간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한겨레출판사)에서다.

이 책은 이들 작가 4인이 모여 ‘태양계 안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규칙을 정하고 각자 집필한 중편소설 4편을 담았다. 작가들은 각각 해왕성과 토성, 화성, 금성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이렇듯 큰 그림만 정한 뒤 각자 집필했지만 네 편의 소설은 모두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소수자’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김보영 작가는 작가 후기를 통해 “서로의 작품을 보지 않고 썼는데도 같은 공간이라는 설정을 공유하고 같은 시기에 집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만한 통일성을 지닐 수 있는가에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닮았는가’(김보영)는 우주선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이 드러내는 야수성과 폭력성을 인공지능(AI) 시각에서 묘사한다. 인간의 몸에 삽입된 AI를 대하는 주변 선원들의 감정과 행동은 비이성적이다. 선원들은 AI가 인간을 동경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AI를 향한 우월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AI가 인간을 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닌 그들은 주인공을 가두거나 때리는 짓을 일삼는다. AI는 인간이 ‘타자에게 갖는 망상’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해하지 못한다. 작가는 결말에 이르러 이런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성차별’이라는 코드로 풀면서 현실을 비판한다.

‘두번째 유모’(듀나)가 그리는 세계는 더욱 잔혹하다. 태양계를 지배하는 두 개의 큰 축, 혼돈과 폭력으로 빚어진 거대악 ‘아버지’와 온화하지만 차가운 ‘어머니’, 그리고 ‘신들의 체스판에 올려진 말’에 불과한 아이들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보여진다.

‘당신은 뜨거운 별에’(장강명)는 금성 탐사에 파견된 천재과학자 어머니 유진과 어머니와 대립하면서 살아온 딸 마리가 합심해 거대 기업에 맞서는 내용이다.

‘외합절 휴가’(배명훈)도 거대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을 그린다. 휴가 기간 화성식민지 청사를 지키던 여성 공무원이 갑자기 촉발된 ‘화성 북반구 연맹 소속 17개 도시 독립선언 가담’이라는 비상상황에서 대의를 위해 침묵을 강요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았다.

이 책은 암울한 세계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영웅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정의감에 가득 차 있는 대신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와 차분한 지성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일반적인 SF 영화, 소설과 다른 점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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