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 616곳 5년간 조사
내부인 범죄 중 퇴직자가 73%
해외유출 15%<국내유출 85%<br /> 서류 도면 절취·이메일 전송 순
"증거입증 어렵고 재판기간 길다"
피해기업 41%, 기술유출 무대응
[ 이현진 기자 ] 경기남부경찰청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은나노와이어 제조기술을 경쟁 업체인 미국 회사로 빼돌리려 한 A씨를 지난 4월 검거했다. 은나노와이어는 g당 가격이 금가격의 8배에 달하는 첨단기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기도 하다. 기술보유 업체 연구팀장을 지낸 A씨의 범행이 성공했다면 해당 기업의 피해액은 300억원을 넘었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추정이다.
◆피해 업체 80%가 내부인 범죄
6년간 협력업체와 공동 개발한 냉장고용 코팅 몰딩제를 대기업에 납품하던 인천의 한 중소기업은 벤더사로부터 돌연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다. 의아하게 생각해 수소문해 보니 경쟁 업체가 같은 제품을 납품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 수사 결과 협력업체가 기술을 빼돌렸다. 경찰은 4월 협력업체 대표와 기술팀장을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산업기술 유출은 크게 국내 경쟁 업체로 기술을 빼돌리는 국내 유출과 해외 경쟁 업체로 빼돌리는 해외 유출로 나뉜다. 비율상으로는 좀 더 손쉬운 국내 유출(약 85%)이 압도적이다. 유출 대상 기술은 산업부 등 정부가 지정하는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 그밖에 해당 기업이 보유한 영업비밀 세 가지로 나뉜다.
유출되는 기술의 90% 이상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만 국가핵심기술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올해 1월에는 경기남부청이 국가핵심기술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증착기술을 중국 업체로 빼돌려 이직하려 한 연구원을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위 사례처럼 산업기술 유출은 대부분 내부자에 의해 일어난다. 지난달 특허청이 영업비밀을 보유한 616개 회사를 조사한 결과 최근 5년간 유출 피해를 입은 기업(86곳)의 81.4%가 내부 직원 소행으로 나타났다. 퇴직자가 72.9%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평사원(32.9%), 임원(11.4%) 순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전·현직 직원이 동종업체를 창업하거나 경쟁 업체에 돈을 받고 기술을 넘겨주는 사례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기술유출 급증에 경찰 집중 조사
유출 방식은 서류나 도면 절취(47.4%), 이메일 등 인터넷 전송(44.2%), 외장메모리 복사(34.9%) 순이다. 최근에는 온라인이나 정보기술(IT) 기기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경찰 수사 역시 피해 기업의 컴퓨터를 디지털 포렌식(컴퓨터 등 각종 저장매체나 인터넷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기법)을 통해 유출된 증거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최근 5년간 영업비밀 유출로 일어난 피해액은 건당 평균 21억원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기업이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 기업의 41.2%가 기술이 유출됐는데도 대응하지 않았고, 수사를 의뢰한 곳은 23.3%에 그쳤다. 특허청 관계자는 “증거를 입증하기 어렵고 재판 과정이 길다는 인식이 강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센터에 따르면 경찰은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기획수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본격적인 기술 시대로 접어들면서 핵심·원천기술 보호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지역마다 개별 수사를 하다 보니 집계·관리되지 않는 범죄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은 올해 처음 수사망을 전국 단위로 넓혔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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