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위산업 육성 '포니 신화'서 배워야

입력 2017-08-15 17:36   수정 2017-08-16 11:22

실패를 딛고 개발해낸 포니처럼
비현실적 K2 국방규격 개선해
방산기술 독립·수출화 앞당겨야

이충구 <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 >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내 방위산업체에서 개발을 완료한 전차 변속기가 국방규격에 의한 내구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K2 전차 양산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구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유가 현실적으로 달성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없는 한국 특유의 요구 조건 탓이라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전차를 구성하는 엔진 등 다른 시스템의 요구 조건과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기존 수입 변속기 시험 조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규격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개발된 변속기가 국방규격을 만족하지 못하면 수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 수입 변속기에는 동일한 국방규격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합리성과 공정성을 결여한 사대주의적 역차별의 전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우리나라 대표 산업의 발전 과정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한강의 기적’이라든가, ‘포니 신화’와 같은 수사 달기를 좋아한다. 철강, 조선, 반도체, 휴대폰 등도 우리 고유의 기술로 일궈낸 기적과 신화의 산업으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동차가 발명된 지 90년이 지난 1970년대 중반에 개발된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는 선진국 자동차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과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경제 자립을 위한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 지원 정책, 자국 제품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지원이 기술 개발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 덕분에 내수시장 성장과 함께 도전적이고 끈기 있는 수출시장 개척으로 세계 5위 자동차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한국은 16번째 자동차 생산국으로 시작해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에 이어 8번째 고유 모델 생산국이 됐다. 포니는 비포장 도로를 24시간 달리던 한국 택시운전사들의 혹독한 시험과정을 통과하면서 인정받았고 남미의 안데스산맥, 열사의 중동지역과 사하라 사막을 거치면서, 또 자동차 종주국이자 격전장인 유럽과 미국시장에서 고통스러운 시련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성장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당시 우리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수입 의존 정책을 폈더라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오늘날과 같은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우위 전력화가 시급한 군당국은 신규 개발에 따른 위험 부담 때문에 국내 개발보다 외국산 도입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산기술 종속은 주권의 종속을 가져오며, 우리 스스로 국가 안보를 지킬 역량이 없다면 유사시에 주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전시작전권 조기 인수를 위한 정부의 노력도 방산 무기와 전투력 우위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 청산은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정책으로 기술과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환부를 치유하는 것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우리 군이 전차에 대한 기존 규격을 면밀히 점검하고 과학적, 기술적 합리성에 기초한 내구도 규격을 정립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미국 M1A1·MIA2 전차와 독일 레오파드 전차의 성능을 능가하는 검은 표범(흑표), 우리의 K2 전차가 막강 국군의 주력 무기가 되고 세계 각국에도 수출돼 또 하나의 성공 신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충구 <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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