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영 기자 ] 17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매일같이 모여드는 시위대 확성기 소리로 시끄럽기만 하던 이곳에 이례적인 ‘침묵 시위’가 열렸다. 100여 명의 동네 주민들은 “집회 시위 이제 그만!” “예전처럼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 등의 피켓을 들었다. 김종구 청운효자동 집회 및 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인근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며 마이크 없이 기자회견을 했다.
‘침묵 시위대’와 기존 시위대 간 충돌도 빚어졌다. 침묵 시위대가 농성 중인 금속노조 천막 앞에 이르자 안에서 “우리 집회를 방해하지 말라”며 고성과 욕설이 날아왔다. 금속노조는 6월부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천막을 기습 설치하고 두 달째 농성 중이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김모씨(75)는 “저들은 항상 주민 피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종로경찰서에 소음 피해 민원을 접수하러 갔더니 ‘아니꼬우면 이사 가면 되지 않느냐’고 빈정거리더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집회 월 100건… “사람 사는 곳이냐”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일대에서 신고된 집회·시위 건수는 102건이었다. 대책위 관계자는 “경찰 신고 집계는 같은 시위대가 참여하는 장기 집회를 1건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실제 집회는 훨씬 많다”며 “대략 300건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집회당 참가자 수는 최소 수십 명에서 많게는 6000명에 달한다고 대책위는 전했다.
효자동 주민 문모씨(47) 가족은 청와대 앞길이 개방된 지난 6월 말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학습권 침해도 심각하다. 청운효자동에는 경복고 등 6개 학교가 있다. 주민 유모씨(53)는 “아들이 고3 수험생인데 집회 소음 탓에 수능 모의고사를 망쳤다고 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청운초 최모군(10)은 대책위에 낸 탄원서에 “시끄러워 공부할 수 없다”고 적었다.
시위대가 길을 막으면서 동네 가게 손님도 뚝 끊겼다. 효자치안센터 인근에 지난해 개업한 한 빵집 주인은 “매출이 ‘0원’인 날이 많다”며 “곧 가게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장사를 접은 ‘골목 상인’들도 속출하고 있다. 빵집 바로 옆의 1층 꽃집은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 인근 상인 윤모씨(44)는 “매일 수백 명이 가게 앞 도로를 점거하다시피 해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중가요 ‘떼창’…“지하철 소음 맞먹어”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측정한 집회장 주변 소음은 환경정책기본법과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상 소음환경기준인 주간 65데시벨(dB)을 훌쩍 넘었다. 시위대는 확성기·마이크를 사용하거나 민중가요를 ‘떼창’하기도 한다. 주민 조모씨(43)는 “지하철 승강장 평균 소음이 69.1dB”이라며 “주민들은 항상 지하철 승강장 안에 살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갈수록 과격해지는 시위로 인한 위협도 크다. 16년째 효자동에 살고 있는 김모씨(54)는 “시위대가 좁은 골목마다 행진하며 ‘이석기 석방’을 외치고 담벼락에 술병을 버리거나 노상방뇨까지 한다”며 “정든 동네를 떠나고 싶지는 않지만 이대로라면 이사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집회 총량제라도 실시해 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대책위는 지난달 20일 종로경찰서에 1차 탄원서를 냈다. 대책위 관계자는 “집회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해 달라는 취지”라며 “호소문을 토대로 2차 탄원서를 작성해 청와대·국회·경찰청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술병, 노상방뇨… 장애인 안전 위협
장애 학생들까지 시위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청운효자동 관내에는 장애인 520명이 살고 있다. 주민센터 건너편 푸르메센터는 종로구에 있는 유일한 장애인 복지관이다. 발달장애·지체장애인 등 500여 명이 매일 찾는다. 시위대 소음은 이들에게 큰 장애물이다. 시위대 소음 때문에 장애인들이 길을 찾지 못하거나 무단횡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교동에 사는 김모씨(31)는 “얼마 전 한 시각장애인이 집회를 피하려고 차도로 가는 걸 보고 아찔했다”며 “이러다 사람이 죽으면 시위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앞길 개방을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집시법은 “주거 지역이나 이와 비슷한 장소로서 집회나 시위로 재산 또는 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학교 주변 지역으로서 집회 또는 시위로 학습권을 뚜렷이 침해할 우려가 있으면 집회·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지난 6월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고 경찰이 새 정부 기조에 맞춰 느슨한 집회관리 방침을 유지하면서 집시법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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