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힐링비법]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사장 "맛집 탐방하며 삶과 사랑에 대해 토론하죠"

입력 2017-08-17 20:53  

20년간 매일 직원·고객과 저녁식사
업무 얘기 않고 대화 독점도 금지
비용은 사비로 결제하며 소통 강조

"보안기업 변신 위해 고객접점 확대"



[ 고재연 기자 ]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사장(56·오른쪽 두 번째)의 휴대폰 전화번호부에서 ‘맛집’을 검색하면 300여 개가 넘는 전화번호가 나온다. ‘강남 한식’을 검색하면 ‘맛집/서울 강남/한식/정가네 부엌’이라는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뜬다. 지역별, 종류별로 분류해 ‘맞춤형 큐레이션’도 가능하다.

지난해 8월 네트워크 장비 판매 및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는 시스코코리아 사장에 취임한 조 사장은 지난 20여 년간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없다. 매일 저녁 고객이나 직원들과 저녁 약속을 잡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식당을 고르느냐가 ‘그날의 분위기’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저녁 자리에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절대 일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영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조 사장은 “삶과 사랑을 논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며 “영업을 위해 만난 자리라 하더라도 식사 전 미팅에서 관련 이야기는 끝내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둘째,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험담도, 혼자 대화를 독점하는 것도 금지다. 셋째, 비용은 사비로 결제한다. 일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기 위해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부터 직장 생활에 대한 어려움까지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는 직원들도 생겼다.

그가 ‘정통 시스코맨’이 아님에도 직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다. 조 사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산업공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컨설팅 회사 액센츄어에 입사해 20년간 첨단산업 부문을 담당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시스코코리아 사장을 지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팀 전무로 일했다. 그리고 다시 지난해 8월 시스코코리아 사장을 맡았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전략을 연구했다면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은 ‘실행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8월 시스코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한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과정지표’와 ‘결과지표’를 만든 일이다. 실적이 떨어지는 조직의 장을 다그치는 대신 현재 실적을 숫자로 보여줬다. 임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엇을 잘하면 1등이 될 수 있는지도 명확히 했다.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하는 하드웨어 기업에서 ‘보안 기업’으로 방향성을 전환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국내 대표 보안회사인 안랩에서 보안사업본부장을 맡았던 배민 상무를 보안솔루션 사업 총괄 상무로 영입했다. 조 사장이 국내 보안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매일 저녁 고객들을 만나며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가는 이유다. 조 사장은 “‘사장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어떻게 회사 실적이 달라지느냐’고 묻는 직원들이 있다”며 “조직 변화와 혁신을 통해 어떻게 그런 것들이 가능한지를 보여줄 생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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