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모 기자 ]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각본’ 없이 진행된 것치고는 다소 싱겁게 끝났다. 문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든 ‘야생성’ 질문은 드물었고, 문 대통령은 15개 질문에 막힘 없이 ‘즉답’을 풀어냈다.
몇 안 되는 까칠한 질문 하나는 ‘코드인사, 보은인사 논란’에 관한 것이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 등 도덕성과 자질 논란으로 중도낙마한 인사 실패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가 궁금한 터였다. 문 대통령의 답변은 아주 의외였다. “역대 정권 다 통틀어 가장 균형인사, 탕평인사, 그리고 통합적 인사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국민들이 내려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탕평인사' 발언 여당도 갸우뚱
한국갤럽이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문 대통령 지지율 78%)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잘못했다’고 꼽은 분야는 다름 아니라 인사였다. 청와대와 내각의 핵심 포스트에는 친노(親盧)·친문(親文), 호남, 86운동권,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골고루 배치돼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두고 지역탕평, 국민통합 인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탕평인사 발언에 대해 “어떤 국민이 인사를 그렇게 인정하나. 자화자찬을 했는데 벌써부터 상당히 오만한 끼가 보인다”고 비판했다.
취임 100일간 가장 논란이 컸던 게 코드·보은인사에 비롯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사였다. ‘황우석 논문 사건’으로 결국 낙마한 박 전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김현종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은 10년 만에 같은 자리에 컴백했다. 주미 대사에는 노무현 정부 때 주미 대사를 지낸 이태식 씨가 유력한 후보로 검증단계에 있다고 한다. ‘재활용 정부’란 말이 나올 정도로 좁은 인재풀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보은인사가 계란파동 불신 자초
이미 코드·보은인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대표적 예다. 그는 최근 국회에서 살충제 계란 유통량 등에 대한 의원들 질문에 “보고받지 못했다” “알아보고 보고하겠다” 등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해 국민 불안만 부추겼다. 오죽하면 이낙연 총리가 공개 회의석상에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거라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질책했을까.
류 청장은 약국을 운영하며 부산시 약사회 회장, 대한약사회 부회장을 지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직능특보와 부산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번을 받은 인물이다. 누가 봐도 보은인사였다.
2009년 2월4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14일 만에 탈세 논란에 휩싸인 톰 대슐 보건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면서 “내가 실수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당시 워싱턴 정가에서는 오바마의 리더십에 상처가 나고, 국정 장악력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솔직한 사과였다”고 평가했다. 소통의 달인으로 칭송받기 시작한 오바마는 2013년 11월 ‘오바마 케어’ 웹사이트 시스템이 먹통이 됐을 때도 “우리가 실수했다. 나는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한 대통령이 될 수도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소통 대통령’을 자처하고 있다. 인사 실패를 자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장진모 정치부장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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