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기간에도 우리는 기술 변혁 와중에 수많은 거대기업의 몰락과 신생기업의 눈부신 부상을 경험하고 있다. ‘반려기기’ 반열에 오른 무선 전화기만 해도 모토로라에서 노키아로 그리고 애플과 삼성전자로 단기간에 승자가 바뀌어 왔다. 우량 기업의 대명사이던 코닥은 소리없이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지만 후지필름은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했다. 독립 서점들을 천하통일했던 반스앤노블은 축배의 잔이 마르기도 전에 아마존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출현한 신생 기업에 왕자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림>은 미국의 우량 기업이 S&P500대 기업에 잔류한 기간 변화인데 경제의 흐름이 얼마나 빨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경영자들이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기술이 사업은 물론 소비자의 삶을 바꾸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채널과 방법, 일하는 방식, 자금과 기업의 자원을 조달하는 방식과 협력사와의 가치사슬 변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이런 기술에 의한 변혁이 더 광범위하고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보의 흐름 돕는 네트워크가 중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군(群)이 거론되고 있다. 스마트(smart), 모바일(mobile), 애널리틱스(analytics), 클라우드(cloud)의 앞자를 딴 ‘SMAC’이라는 기술군도 이제 상식이 됐다. ‘알파고’의 충격을 가져온 딥러닝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차세대 유전자 기술, 블록체인, 3D(입체) 프린터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군이 등장한다. 이 중 어느 것이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될까.
필자의 어린 시절 시골 학교의 책들은 무한한 상상력의 자극제였다. 그중에서도 먼 미래를 가장 신나게 상상할 수 있게 한 것은 ‘아톰’이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로봇 아톰이 곧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이었다. 그러나 아톰은 아마도 필자의 생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왜 아톰은 아직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류에 의해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역사적 경험으로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첫째, 시대를 만드는 기술의 특징은 네트워크 기술이라는 것이다. 경제는 교환이고 거래다. 경제발전, 즉 인류의 부는 거래 활성화를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거래를 활성화하는 기술들은 잘 채택된다. 경제적 교환은 물건, 정보, 돈과 사람의 거래와 왕래가 동반된다. 이런 거래 요소들의 이동 비용을 줄이고 속도를 빨리하는 기술들은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빨리 채택된다.
우체국은 정보(지식)의 흐름을 빨리하는 네트워크다. 미국에서 1792년의 법으로 시작된 우체국 도입 시기와 도시의 혁신(특허 등록)은 상관관계가 높았다. 19세기 우체국은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지식의 웹(Web)이었던 것이다. 물건과 사람의 이동을 더 빠르게 한 기술은 언제나 세상을 크게 바꿨다. 낙타의 가축화에 성공한 아라비아 사람들은 해상 비단길을 사막으로 이동시키면서 부를 축적했고 미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한 철도나, 지구를 지구촌으로 만든 비행기는 다 이런 물질의 이동을 가속화한 네트워크 기술이자 시간 압축 기술이다.
소비자 사로잡는 단순한 기술이어야
둘째, 소비자가 선택권을 갖는 기술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과거 방송국이나 신문사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소위 ‘밀어내기 기술(push technology)’인 반면 인터넷은 소비자가 먼저 선택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끌어 당기는 기술(pull technology)’이다. 소비자는 강요하는 기술을 잘 선택하지 않는다. 웹 기술 초기에 반짝했던 푸시 기술들은 생존하지 못했다. 한동안 ‘비컨’ 또는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연계)’ 기술이 주목받은 적이 있으나 이런 디지털 호객행위는 당연히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시대를 만드는 기술의 특징은 단순한 기술이란 점이다. 아톰이나 우주선은 복합기술로, 수많은 요소기술이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 요소기술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비용과 어려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기술은 경제적으로 가격이 내려가고 성능이 높아지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린다.
넷째, 간단하고 사용이 용이한 소위 ‘쉬운 기술’이란 점이다. 웹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명령어를 마우스 뒤에 숨겨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기술이다. 원리가 복잡해도 별다른 교육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쉬운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전기를 사용하는 데는 스위치 조작이면 족하다. 이런 기술이 승리한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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