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화(자신들만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란 용어가 한때 쇠락하던 일본경제를 상징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1980~1990년대 세계시장을 정복했던 일본 정보기술(IT)업체들의 갑작스런 몰락을 설명하던 키워드 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전자업체들의 사세가 이미 많이 기울었고, 아베노믹스(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시행 이후 일본 경제의 회복기조가 뚜렷해지면서 요즘에는 예전만큼 자주 접하긴 힘든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갈라파고스화’라는 용어를 다시 떠올릴 법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후지쓰 입니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IT제품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이라면 후지쓰가 만든 노트북이나 PDA 제품들을 써보거나 눈길을 두셨던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지쓰가 오랫동안 휴대폰을 제조해왔다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합니다. 후지쓰 휴대폰을 보신 분은 더욱 적을 듯 하고요.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지쓰가 휴대폰 사업을 매각할 방침을 굳혔다고 합니다. 투자펀드 등에 매각을 타진하고 나섰다는 소식입니다. 일본 폴라리스캐피털그룹, 영국 CVC캐피털파트너스 같은 투자펀드가 인수후로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레노보, 화웨이, 훙하이 등 중국계 IT기업들도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됩니다. 매각액수는 수백억엔(약 수천억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다만 후지쓰는 자사 브랜드는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는 의미에서 휴대폰 사업회사의 주식 일부는 계속 보유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후지쓰는 오랜 세월 애착을 갖고 생존을 노력해왔던 휴대폰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업체들의 공세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든 것입니다. 일본 내수시장 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던 것입니다. 현재 후지쓰는 일본 휴대폰시장 점유율 5위 업체라고 합니다. 올해 판매 전망은 310만대. 정점이었던 2011년(약 800만대)의 절반 이하로 찌그러 들었다고 합니다.
후지쓰가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하면 일본 업체 중에선 소니와 샤프, 교세라만이 휴대폰 제조 사업에 남게 된다고 합니다. 여전히 소니 정도를 제외하면 업계 관계자나 IT분야에 관심이 많은 분을 제외하면 휴대폰을 만드는지 조차 몰랐던 경우가 많을 듯 합니다.
앞으로 후지쓰는 주력인 IT서비스 사업에 경영자원을 집중시킨다고 하네요. 후지쓰의 휴대폰 시장 철수 소식은 ‘졸면 죽는다’는 말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낡은 표현이 된 IT업계의 치열한 경쟁상이 드러나는 또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세칭 ‘잘 나가는’ 한국 IT업체들도 방심을 했다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 같습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