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저널] '살충제 달걀 쓰나미'에 휩쓸린 소비자 이성

입력 2017-08-22 18:44  

막연한 공포에 커지는 '에그포비아'
세상 만물에 독 없는 것 없어
위험 낮다면 수용하려는 자세 필요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올해는 정유(丁酉)년 닭띠 해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시작된 ‘닭의 수난시대’가 ‘살충제 달걀’로까지 이어졌다. 미국의 원조물자로 만든 옥수수빵을 학교급식으로 받아먹던 시절을 잊을 수 없는 필자에게 부잣집 아들이라야 도시락에 얹어 올 수 있었던 달걀 수백만 개가 쓰레기로 쓸려 나가는 TV 영상은 몹시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괴담이 먼 얘기가 아닌 상황에서, 살충제에 오염된 달걀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철저한 확인을 미뤄두고, 마구잡이식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안타까운 일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의 미숙한 대처 또한 살충제 달걀 소동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살충제 달걀의 진원지는 유럽이다. 선진 유럽 각국이 시끄러웠으니 한국에서의 광풍은 당연하다는 보도심리가 작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먹는 문제와 관련한 유럽 각국 언론의 보도 또한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자기비판이 적지 않게 이어져 왔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부설 막스플랑크인간개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세계적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가 그의 동료 둘(경제학자, 통계학자)과 공동 저술한 《통계의 함정》(2014)은 언론이 영혼 없이 보도하는 수치나 통계에 지구촌 소비자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반(反)자연적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10~20년 전만 해도 인체 유해성과 관련한 검증은 PPM, 즉 ㎏당 ㎎, 다시 말해 100만분의 1이 측정 단위였다. 그러나 검증기술 진보에 따라 그 단위가 1980년대 10억분의 1까지 내려가더니, 요즘에는 100경분의 1까지 밝혀낼 수 있다. 이는 큰 호수에 각설탕 1개를 녹여도 그 성분을 다 밝혀낼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기거렌처의 설명이다.

급기야 우리는 “모유(母乳)에서 300가지가 넘는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떨떠름한 보고까지 접하게 됐다. 하지만 현존하는 검증기술을 모두 동원할 경우, 모유의 유해성 물질은 300가지가 아니라 3000가지, 3만 가지도 될 수 있다. 여기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 “그래서 어쩌라고?”다.

현대약학의 아버지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는 “만물에는 모두 독성이 있다. 세상에 독성이 없는 물질은 없다. 독이란 오직 그 복용량에 따라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모든 약은 다 독이다. 다만 그 약과 독의 차이는 약의 사용량이 자기 몸에 맞는지 안 맞는지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인들이 즐기는 생선 복에는 맹독이 있지만 그 독을 적당량 섭취하면 ‘이독치독(以毒治毒: 독으로 독을 죽인다)’ 할 수 있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통계의 함정》은 저명한 생화학자 브루스 에임즈의 연구결과도 소개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있는 유해물질의 99.99%는 ‘천연’에서 생성된 것이다. 오로지 0.01%만 생산단계나 포장, 판매과정에서 ‘인공’으로 추가된 것이다. 미국인 1인이 섭취하는 자연상태의 유독물질은 하루에 약 1500㎎으로, 인공 살충제 0.09㎎의 1만 배가 넘는 엄청난 수준”이라는 게 에임즈의 지적이다.

2010년 초 다이옥신 공포가 퍼졌다. 수백만 개의 달걀이 다이옥신 1조분의 3g(3픽토그램)에 오염됐다는 이유로 유통정지됐다. 그 당시 ㎏당 다이옥신 농도가 10배나 높았던 독일산 뱀장어와 발트해 생선은 합법적으로 유통 소비됐다는 사실은 인류가 먹고 마시고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인식하고 소화해야 하는 ‘위험’의 크기에 대한 끊임없는 딜레마와 논쟁을 잘 설명해준다.

하루 126개를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살충제 달걀’을 기피하는 소비자의 과잉반응과 심리구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틀은 과연 무엇일까. 영국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은 “최대의 리스크는 최소한의 리스크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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