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중임제라면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늘리자는 것일 뿐
5년 단임제보다 낫다는 증거 없고 중임제로 바꿔야 할 이유도 없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바른사회 공동대표 yjlee@khu.ac.kr >
문재인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개헌을 언급한 데 이어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도 국민적 합의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헌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다시 한 번 강력한 개헌 의지를 밝혔다.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에 개헌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라도 내년 지방선거 때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하겠다고까지 말했다. 개헌의 방향과 관련해서는 지방분권과 국민기본권 확대를 언급했고, 중앙권력구조는 좀 더 논의해 봐야 된다고 했지만, 아마도 4년 중임제 대통령책임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 시절 4년 중임제를 주장한 바 있고, 개헌특위 주변에서도 여당은 4년 중임제로 가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국가라는 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집 전체가 기울어지거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일단 손을 대면 자칫 침묵하는 다수보다는 목소리 큰 소수의 특수한 이익이 더 많이 반영돼 기초가 기울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개헌이 절실히 필요한가’라는 것이다.
우선 지방분권의 확대는 개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방분권을 내실화할 재정분권은 관련 법률의 개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민의 기본권은 현재 헌법에서도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87년 헌법’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기본권을 그 어느 나라 헌법보다 잘 보장하고 있다.
결국 중앙권력구조가 개헌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데 굳이 왜 4년 중임제인가? 중임제 개헌론자들이 지적하는 단임제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임기 중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단기적 정책에 치중하게 된다. 둘째, 재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임기 초기부터 권력누수 현상, 이른바 레임덕이 올 수 있다. 셋째, 재심판의 기회가 없어 민주적 책임성이 결여된다.
그러나 단임제가 단기 정책을 부추긴다는 것은 실제로는 우려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 역대 단임제 대통령하에서도 임기를 넘는 많은 중요한 국가 장기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돼 왔다. 오히려 4년 중임제하에서의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임기 중 성과가 나오는 단기 정책에 집착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단임제는 레임덕이 임기 초기에 올 수 있다는 주장 또한 과장된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대체로 임기 초반에 높은 여론 지지율을 기반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대체로 레임덕은 임기 종료 1년여를 남기고부터 나타났다. 그보다 빨리 레임덕이 나타난 경우는 국정 운영 미숙에서 비롯됐다.
중요한 것은 중임제를 채택한다고 해서 레임덕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예를 보면 재임된 대통령은 임기 1년 후부터 정치적 영향력이 급감한다. 아주 유능한 대통령이더라도 임기 2년차의 중간선거 이후에는 레임덕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단임제가 정권에 대한 재심판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민주적 책임성을 해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그런 논리라면 중임제의 경우에도 재선을 포기하거나 재선된 대통령은 재평가 기회가 없으므로 민주적 책임성을 결여한다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단임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임기 중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를 통해서, 그리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이뤄진다.
4년 중임제 개헌의 실질적인 효과는 현재 5년인 대통령 임기를 사실상 8년으로 늘리는 것밖에 없다. 200년 넘게 4년 중임제 대통령제를 유지해온 미국의 예를 보면 45명의 대통령 가운데 재선을 시도했다 실패한 사람은 단 몇 사람에 불과하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을 시도하면 성공할 확률이 90%를 웃돈다.
이렇게 보면 4년 중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낫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꿔야 할 만큼 필연적이고 시급한 이유도 없다. 오히려 부분적인 개헌 시도가 헌법의 기본이념과 정체성까지 건드리는 개헌으로 번질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4년 중임제 개헌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 게 좋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바른사회 공동대표 yjlee@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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