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 원전 기술, 해외선 러브콜… 중국 "핵연료 검증 맡아달라"

입력 2017-08-22 18:57  

중국, 한국에 원전기술 첫 지원 요청

원자력연구원, 중국 원전 핵연료 설계검증
중국 '차세대 핵연료' 개발에 활용

국내선 문재인 정부 탈원전 기류에 사용 계획조차 안 잡혀 있어
"중국이 상용화 선점" 지적



[ 박근태 기자 ]
중국이 2020년부터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할 차세대 핵연료 기술 검증을 한국 과학자들에게 맡겼다. 중국이 국가 전략 기술에 해당하는 원전 기술 개발을 한국에 도와달라고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핵연료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이 좋은 이 기술은 한국이 150억원을 들여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국내 사용 계획은 탈(脫)원전 바람 속에서 일정조차 잡혀 있지 않아 우리 과학자가 애써 개발한 연구 성과의 결실을 중국 측이 먼저 가져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기술에 ‘러브콜’ 보내는 중국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2일 중국 원전 정책을 집행하는 중국핵공업그룹(CNNC) 산하 중국원자능과학연구원(CIAE)으로부터 차세대 핵연료인 ‘이중냉각핵연료’ 설계를 검토하는 과제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원자력 발전은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방식이다. 원자로에서 핵분열이 일어나도록 핵물질인 우라늄을 담고 있는 용기가 바로 핵연료다.


한국 과학자들이 맡은 과제는 이런 핵연료가 잘 설계됐는지, 성능과 안전성이 보장되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2019년까지 중국에서 이중냉각핵연료 핵심 설계안을 넘겨받아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게 된다. 용역료는 53만달러(약 6억원)를 받기로 했다. 김형규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은 이중냉각핵연료를 자국 내 기존 원자로의 출력 증강에 활용하고, 새로운 노형의 핵연료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며 “다른 기술들도 수출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중국이 한국에 설계 검토를 맡긴 건 국내 기술이 가장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이중냉각핵연료는 가장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핵연료 기술이다. 핵분열이 일어나는 핵연료가 너무 뜨거워지면 원자로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다. 기존 핵연료는 우라늄 펠릿이 꽉 채워진 구조지만 이중냉각핵연료봉에는 가운데 부분이 뚫려 있어 연료봉 안팎으로 냉각수가 흐른다. 냉각수와의 접촉면적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핵연료 온도를 30% 낮출 수 있고 출력도 20% 높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중국의 ‘원전 굴기’

한국은 신고리 1·2호기 등 국내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를 대체할 목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차세대 핵연료를 개발했다. 원자력연구원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상용화 단계 직전까지 핵심 제조 기술을 확보했다.

원전 기술 국산화를 추진하는 중국도 이에 주목했다. 중국은 원자폭탄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 기술은 한국에 뒤진다. 원전에서 사용하는 핵연료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일본 등 7개국이지만 차세대 핵연료 기술은 한국이 앞선다. CIAE는 2011년 먼저 한국에 이중냉각핵연료 기술 개발 협력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순한 연구 협력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중국 측이 이번에 아예 핵연료 검증을 한국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중국은 2020년까지 상용원전인 친산원전 2호기에 이중냉각핵연료를 장전하는 것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36기 원전을 가동 중이고, 건설 중이거나 계획된 원전도 61기에 이른다.

◆중·러에 원전시장 뺏길 수도

중국이 차세대 핵연료 사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과 달리 한국은 활용 계획조차 없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용 의사를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연구는 2014년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과학계에선 탈원전 기류까지 겹치면서 차세대 핵연료봉 기술 도입은 더욱 불투명해졌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60년에 걸쳐 원전 가동을 멈추겠다는 탈원전 계획을 밝히면서 국내 원전의 핵연료 수요도 점진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중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원전 관련 기술 개발과 적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은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아직 2세대 원전에 머무르고 있지만 한국은 3세대 원전으로 기술력이 월등히 높다”며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원전 기술을 포기한다면 중국과 러시아에 독무대를 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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